홈 > 문중 자료 > 일기 > 임천청액일기(臨川請額日記) > 01권 > 1864년 > 8월 >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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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AC+K09+KSM-WM.1864.4717-20170630.01031020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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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864년 8월 12일 / 高宗 1 / 甲子
날 씨 맑다.
내 용
이른 아침 종숙부를 모시고 홍 진사(洪進士) 어르신에게 갔다. 그는 뺨과 이마의 붓기가 어제 보다 더욱 심하였다. 홍 진사는 죽을 형상은 아니라고 장담했지만 또한 심기가 평안하고 고요하지 않아 전송하는 자 모두 그를 염려하니 근심되고 근심되었다.
아침 사이에 듣기로 도기방(到記榜)을 성균관에서 내 걸었는데 제술(製述) 급제 1인은 평안도(平安道) 한치익(韓致益), 강제[講] 급제 2인은 강원(江原) 1인과 전라도(全羅道) 1인이었는데, 곧 어제 다시 불려갔던 자들로 나는 비로소 일의 기미를 알았다. 그 사람은 죄 없이 잘 외웠던 자이나 명관(命官)이 필시 한양 유생들을 강제로 호불(呼不)하게 했기 때문에 그 사람이 대석(坮石) 아래로 나와 말하기를 "저는 죄가 없는데 낙방이 되어 다만 통곡할 뿐입니다."라고 하였다. 잠시 뒤에 대전(大殿)으로부터 하교하니 "조금 전 유생은 어찌하여 급제(及第)를 주지 않고 내보냈느냐!"라고 하니 명관이 일어났다가 엎드려 말하기를 "그들은 불통입니다."라고 하였다. 대전에서 답하여 말하기를 "나는 잘 한 것처럼 보이니 다시 불러들이도록 하라."고 하였다. 고로 곧바로 불러들여 호신(呼新)을 하였다고 할 뿐이다.
한치익은 곧 평안도 상원(祥原) 사람으로 72세이다. 본래 과거에 참여하러 올라온 자는 아닌데 그의 아들이 한양에 머물면서 마침 도기(到記)가 설치된 것을 알고 집에 계신 아버지의 성함으로 대신 입제(入製)하여 올렸고, 선발된 후에 바야흐로 사람을 보내어 아버지를 맞이할 계획을 삼았는데 갑자기 입시(入侍)하라는 명이 있어 그 아들이 마지못하여 자백을 하였다. 곧바로 충군(充軍)으로 정배(定配)되니 과거시험의 변고 가운데 더욱 심한 것이었다. 그 아들의 죄를 이루 다 주벌(誅伐)할 수 있겠는가!
저녁 사이에 황동보(黃同甫)의 객관을 찾았는데 막 책문을 초한 것을 보았다. 황동보 스스로 말하기를 "태어난 이래로 처음 해보는 것으로 격식과 예식을 익히지 않았다."하니 지나치게 겸손하게 말하기에 그가 만든 것을 보니 꾸미는 말이 아닌 것 같았다. 먼 고향에 거주하면서 이러한 재능을 가지고도 시문을 익히지 않은 것 또한 가상하다고 할 만하였다. 옆에 시를 적은 두루마리[시축(詩軸)]가 있는데 낙하(洛下) 지역의 풍습을 면하지 못하니 이는 그가 고향에 오래 거주하여 아직까지 도성의 세련된 투식을 본받지 않았기에 잠시 말장난을 쳤는데 알고 후회하는 뜻이 있는 것 같으니 도리어 죄송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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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十二日。
晴。早朝陪從叔父。往洪進士丈。頰額浮氣。比昨尤甚。自家大談不死之狀。又非寧靜心氣。送者皆慮之。悶愁悶愁。朝間聞到記榜出揭成均館。而製述及第一人。平安道韓致益。講及第二人。江原一人全羅道一人。而卽昨日更招入者。始知事機。則其人無罪善誦。而命官爲其■(須)須京儒强抑呼不。其人下坮石而出曰。生無罪見屈。直欲痛哭云云。少頃。自大殿下敎曰。俄者其儒生。何不給及第而出送也。命官起伏曰。彼不矣。答曰。吾見善爲。更爲招入云云。故卽召入呼新云耳。韓致益卽平安道祥原人。而年七十二。本不來參科者。而其子留京。適見到記設試。以在家之其父名。代入製呈。而被選後。方走人爲邀來之計。而忽有入侍之令。其子不得已自白。卽爲充軍定配。科變中尤者也。其子之罪。可勝誅哉。夕間尋黃同甫館。見方草策。而自云。生來初手。不習格例。謂是過謙。看所作。似不是餙辭。居在遐鄕。以若才具。不習時文。亦可尙也。傍有詩軸。不免洛下風習。而此則其居鄕舊。尙非慕效紫陌之套。而暫貢戱語。似有知悔意。還悚耳。

주석

도기(到記) : 조선시대에 실시된 모임의 방명록 또는 유생의 출석부. 호불(呼不) : 과거에 응시한 사람이 시험장에 나와서 결시(缺試)할 목적으로 호명(呼名)에 대답하지 않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