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문중 자료 > 일기 > 임천청액일기(臨川請額日記) > 01권 > 1864년 > 8월 >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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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AC+K09+KSM-WM.1864.4717-20170630.01031020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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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864년 8월 11일 / 高宗 1 / 甲子
날 씨 맑다.
내 용
진사 홍 장(洪丈)이 여장을 꾸려 출발하려고 했지만 가마꾼이 세를 다투어 제때 출발하지 못했다. 내일 다른 가마꾼을 다시 구하여 여장을 꾸려 출발할 생각이지만 병든 노인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일은 하루가 급하니 걱정스러운 일이다. 식전에 도기(到記)를 묻고 과장에 들어갔으니 위양(渭陽)이 문에 들어가는 것을 보기 위해서이다. 전현(磚峴) 밖 월근문(月近門) 앞으로 나가니 정시(庭試) 때와 다름이 없었고, 거안(擧案 : 공회에 참여하는 관원이 임금이나 상관에게 올리던 명함)하는 진사가 600여 명이고 아울러 따르는 종군(從軍)과 문필장(文筆匠)은 그 수가 이처럼 많을 수는 없으니 과거시험의 폐단에 법도가 없음을 또한 볼 수 있다. 저녁에 위양(渭陽)이 묵는 관사에 갔으니 과장(科場)이 어떻게 치러졌는지를 묻기 위해서이다. 서제(書題)는 ‘봉양하는 데는 그 즐거움을 다한다.[養則致其樂]’였으며, 과장에서 본 적이 없는 시제를 만났지만 시권을 올린 것은 자못 허술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운수에 달려있는 일이니 어찌 망령되이 생각을 낼 수 있겠는가?
듣건대 일전에 대원군이 도기(到記) 시험의 급제자로 민승호(閔承鎬), 조광하(趙光夏), 이 씨 성의 사람 합 세 사람을 내정하여 동조(東朝)에 아뢰기 위해 주렴 밖에 나아가 먼저 고하기를 "이번 도기 시험에 조광하는 구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라고 운운했다고 한다. 조광하(趙光夏)조경하(趙敬夏)의 맏형이다.
동조에서 답하기를, "대감은 어찌 이와 같은가? 조 가(趙哥)가 급제하기에 부족한 사람이니 나 또한 염두에 두지 않았는데 대감은 어찌 홀로 급급한가? 그러지 말라. 지금은 처음 다스려 화평하게 이끄는 때인데, 매번 사람을 뽑는 일에 사사로움을 쓰려고 한다. 대감은 어찌 깊이 생각하지 않고서 이와 같이 하는가? 반드시 공도(公道)에 극진히 힘쓰게 하라. 이번뿐만 아니라 이후에 동당(東堂) 초회시(初會試)에도 모두 마땅히 내가 스스로 알아서 할 것이니, 대감은 이렇게 알라. 듣건대 동당시 급제자로 이미 노론 15인, 소론 몇 사람, 남북 몇 사람이 내정되었다고 하니, 이 무슨 소문이며 이 무슨 국시(國試)인가? 개연함을 매우 견딜 수 없다."라고 하니, 대원군이 무료(無聊)하여 물러나 민 씨와 이 씨는 처음부터 입에서 말을 꺼낼 수 없었다. 대개 동조에서는 지성으로 공무를 집행하고 나라의 복록을 인도하여 영원히 하려는 마음으로 잠잘 겨를이 없는 데에 이르렀는데, 대원군은 원래 지식이 없어서 이것이 국가의 운세가 영원하도록 하늘에 기원하는[祈天永命] 방법이 되는 줄은 모르고 오로지 자기의 소견으로 행하고자 하여 위로 성자(聖慈)의 간절한 성교(誠敎)를 이을 수 없으니, 이 과연 무슨 마음인가? 실로 알 수 없으니 한탄스럽다.
밤이 깊은 뒤에 들으니 반촌(泮村)에 강생(講生) 어떤 사람이 부름을 받고 다시 들어갔다고 하니, 무슨 연고인지 모르겠지만 저녁 전에 호불(呼不: 이름을 불러도 대답하지 않음)하고 나간 자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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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十一日。
晴。洪進士丈束裝將發。而轎軍爭貰。未得趁發。以明日更求他軍治發計。而病老還鄕。一日爲急。悶事。食前問到記入場。爲觀渭陽入門。出去磚峴外月近門前。無異庭試時。而進士擧案六百餘員。兼以隨從軍文筆匠。其數不得不如是之多。而科弊之無律。亦可見矣。夕往渭陽館。爲問場中如何經過。書題以養則致■(某)其樂。而■(擧)擧場無遇。呈券頗不虛疎云。而在數之事。何可妄生意耶。聞日前大院君以到記及第。作定閔承鎬趙光夏李姓人合三人。入稟東朝次。詣簾外。先告今番到記趙光夏。不得不區處云云。夏卽趙敬夏之伯兄。東朝答曰。大監何若是也。趙哥及第之不足。吾亦不以爲意。大監何獨急急也。勿爾也。方今一初導和之時。每欲用私於選擧之事。大監何不深念而如是也。必使用極公道也。非徒今番。此後東堂初會試。皆當吾自知爲之。大監則以此知也。聞東堂及第。已有作定老論十五人少論幾人南北幾人云。是何所聞。是何國試也。切不勝介然。大院君無聊而退。閔李原不得出諸口。盖東朝至誠行公。導永國祚之心。至不暇寐。而大院君元來無知識。不知此爲祈永之道。而專欲行其所見。不能上承聖慈之懇懇誠敎。是果何心。實不可知。恨嘆。夜深後聞泮村講生誰人被召更入。未知何故。而夕前呼不而出者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