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문중 자료 > 일기 > 임천청액일기(臨川請額日記) > 01권 > 1864년 > 8월 >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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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AC+K09+KSM-WM.1864.4717-20170630.01031020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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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864년 8월 8일 / 高宗 1 / 甲子
날 씨 맑다.
내 용
밥을 먹은 뒤에 태학 제관(太學祭官)이 들어가니 또한 볼만 했다. 오전에 습의(習儀: 나라의 의식을 미리 배워 익힘)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여러 벗들을 따라 들어가 구경했는데 모양이 전혀 없었다. 이른바 예절은 다만 수복의 지시만 들었고, 승강(升降)과 읍배(揖拜)하는 때에는 제관(祭官) 이하로부터 서로 웃어서 마치 장난하는 모양 같았다. 이는 매우 위엄 있는 의식인데, 내 보고 싶지 않은 탄식이 있었으니 강신주를 따르고 난 뒤부터는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탄식스럽고 탄식스럽다. 듣건대 거재(居齋) 진사(進士) 남종원(南鍾遠)이 북부도사(北部都事)를 제수 받았다고 한다. 그는 곧 소북(少北)으로 바야흐로 양지(陽智) 주현(周賢)의 처남이 된다. 과거시험 때 그의 생질을 만났기 때문에 북부도사로 갔다. 서상조(徐相朝)가 충군(充軍)으로 유배된 뒤로부터 이미 세 번 바뀌었고 남종원(南鍾遠) 또한 며칠 동안 차함(借銜: 조선 시대에 직함은 있으나 맡은 직무가 없던 관직)했다고 한다. 근래의 벼슬이 대개 이러한 투여서 반달 동안 한 관직을 하는 이가 없으니 또한 국정을 잡는 것을 과시하는 일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감역(監役)은 하계(下溪) 이후에 모두 80여 인을 내었다고 하니, 이를 말미암아 다른 일을 알 수 있다. 우습고도 탄식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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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初八日。
晴。食後太學祭官入去。亦可觀。午前聞習儀。從諸伴入觀。沒無模樣。而所謂禮節。只聽守僕指敎。升降揖拜之時。自祭官以下相笑。而若作戱擧樣。是甚威儀。吾不欲觀之嘆。不待旣灌之後耳。嘆嘆。聞居齋進士南鍾遠除北部都事。卽少北。而方爲陽智周賢妻男。科時爲見其甥往北部都事。自徐相朝充軍定配後。已三易差。而南鍾遠亦數日借啣云。近日仕䆠。大槪此套。而無半月一職者。亦出於誇耀執柄之事云耳。監役則下溪後。凡出八十餘人云。從此可知他事矣。笑嘆笑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