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문중 자료 > 일기 > 임천청액일기(臨川請額日記) > 01권 > 1864년 > 8월 >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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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AC+K09+KSM-WM.1864.4717-20170630.01031020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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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864년 8월 1일 / 高宗 1 / 甲子
내 용
동이 트자 원일(元一)이 먼저 일어나 과장에 들어갔다. 느리고 진중한 자라도 과거시험 욕심에 민첩함이 이와 같으니 웃을만했다. 평명(平明)에 한 접(接)과 더불어 천해 접(川海接)에 들어갔다. 접들 모두 휘장으로 가렸고, 해저(海底)와 소호(蘇湖)의 두 곳의 노유(老儒)들은 이미 들어와 함께 앉아 있었으니, 강제(講題) 시험만큼은 든든했다. 조금 뒤에 시제가 나왔는데, "명명덕(明明德), 신민(新民), 지어지선(止於至善)은 대학(大學)의 강령이 되고, 격치성정수신(格致誠正修身)은 명덕의 절목이 되며, 제가치평(齊家治平)은 신민의 절목이 되지만, 지어지선은 유독 그 절목이 없는 것은 어째서인가?[明明德新民止至善爲大學之綱領, 而格致誠正修身爲明德之目, 齊家治平爲新民之目, 而止至善之獨無其目者, 何歟?]"였다. 이는 다름 아니라 ‘명명덕’, ‘신민’의 절목을 가지고 곧 ‘지어지선’ 절목의 의리로 삼았기 때문이다. 온 과장 사람들이 모두 시권을 제출 했는데, 듣기에 시관(試官)이 곧 "(대학의) 하삼장(下三章)의 인경효자신(仁敬孝慈信)에 주의해야한다"고 했다 한다. 만일 그러하다면 벗들 가운데 아무개 접들은 모두 시험이 허사가 되었을 것이니 탄식하고 탄식했다. 의제(義題)는 "한 사람의 군주가 크게 선하면 만방이 바르게 될 것이다.[一人元良, 萬邦以貞]"였다. 공백(公伯)중현(仲賢) 등 여러 공들은 모두 잘 작성하여 일찍 제출하였으니 사뭇 가망이 있을 것 같아 다행이고 다행이다.
오후에 원일이 인마를 돌려보내주어 이건(而建) 형이 순조롭게 말을 타고 내려가게 되었다. 대개 그는 혹 탄신일 이후에 잇달아 임금님이 사면의 은전을 베푸는 일이 있을까 하여 4, 5일을 머물며 기다렸는데, 끝내 가망이 없었기 때문에 이번 마편을 통해 내려가게 된 것이다. 그래서 송별할 즈음이 되자 갑절 안타깝고 염려될 뿐이었다. 오후에 벽송정(碧松亭) 위에 올라 위로 궁궐 담장내의 가장 높은 곳을 바라보니 베로 된 장막을 설치하여 어좌(御座)를 열었고, 아래로 과장 가운데를 바라보니 다사(多士)들이 왕래하며 시권을 내고 있었다. 완연히 태평한 기상이었다. 앉아서 완상하며 권태로움을 잊다가 조금 뒤에 내려와 문약(文若)측 여관에 들어갔는데, 공백 형은 아직 나오지 않았으니 거느리는 사람이 많음을 상상할 만했다.
돌아오는 길에 위양(渭陽)측 여관에 들어가 부시소(副試所)에서 나온 소지(小紙)를 보니, "의제(疑題)는 장내 모두가 근실하게 글을 지은 것 같지만 필시 잘 짓는 자로 하여금 다시 지어서 들여보낸 것이다."고 하니 우스울만했다. 이른바 주시관(主試官)은 다만 잘못 지은 것에 실망했을 뿐만 아니라 사적인 통로를 엄히 막았다고 했는데, 이에 그것이 낭설이었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비록 잘 지었다 하더라도 어찌 가망이 있겠는가? 그러나 젊은이들은 또 지어서 올릴 뜻이 생겨 저녁이 지나기 전까지 참고 있으니 또 한 번 웃을만했다. 저녁에 …… 부시(副試)이 사방으로 각 개인이 거처하는 여관에 통지하면서, ‘반촌의 사관(私館) 안에서 묘책을 짜낸 것’이라고 하니 통탄할만하다. 위양측도 그 가운데 들어갔기에, 모르는 사람들은 내가 묘한 이치가 있는 자라고 의심한다고 한다. 자장(子長)이 밖에서 듣고 와서 웃으며 전하니 웃을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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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八月
初一日。
開東元一先起入去。緩重者。敏於科欲如是。可笑。平明與一接。入去川海。而接皆隔帳。而海湖兩老儒。已入來同坐。可恃於講題耳。少頃題出。明明德新民止至善。爲大學之綱領。而格致誠正修身。爲明德之目。齊家治平。爲新民之目。而止至善之獨無其目者。何歟。別無他。以明新之目。卽爲止至善之目之義。滿場皆呈卷。而聞試官則以下三章仁敬孝慈信主意云。若然則知舊某某接。皆是虛事。嘆嘆。義題則一人元良萬邦以貞。而公伯仲賢諸公。皆善作早呈。頗有可望。幸幸。午後元一人馬還送。而建兄爲順騎下去。盖或有誕辰後繼施宥典。而留待四五日。終無可望。故因便下去。送別之際。一倍矜念耳。午後上碧松亭。上望宮墻內最高處。設布帳。開御座。下臨場中多士往來投卷。宛是太平氣像。坐玩忘惓。有頃下來。入文若館。公伯兄尙未出來。其多率可想耳。歸路入渭陽館。見自副試所出來小紙。疑題擧墻皆謹作。必使善作者。更制入送云。可笑。其所謂主試也。非徒誤作失望。嚴防私路之云。於此見其浪說耳。雖善。豈有可望耶。然少輩又生制呈之意。忍過夕前。又一可笑也。夕▣…▣【缺】副試四通私館。居中釀妙云。可痛。而以渭陽之亦入其中。而不知者疑吾有妙理云。子長自外聞來笑傳。可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