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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AC+K09+KSM-WM.1864.4717-20170630.01031020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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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864년 7월 29일 / 高宗 1 / 甲子
내 용
일찍 일어나 과장(科場)에 들어갔다. 접중(接中)은 사뭇 넓고 가까워 앉아서도 시제(試題)가 걸린 것이 보이니 또한 염려될 것이 없었지만, 인근 접중 사람들의 침해를 당해서 젊은이들이 바야흐로 언쟁을 일삼고 있었다. 아직 시지(試紙)를 펴고 벼루를 여는 데에 이르지 못하여 서제(書題)가 이미 걸렸으니 곧 "나아가면 마치 해처럼 밝고, 지켜 볼 때에는 마치 구름과 같이 온후했다.[就之如日, 望之如雲]"였다. 「체화(棣華)」 장에 있는 것이라 여겨 책을 펼치자 쉽게 찾을 수 있었고, 철(哲) 군으로 하여금 다시 『연집(蓮集)』에서 찾으라고 했지만 없다고 했다. 결국 써서 제출했으나 필체가 매우 작았다. 비록 크게 잘못 지은 부분은 없지만 글은 고풍이고 필체는 괴상하니 어찌 만에 하나 붙을 수 있겠는가? 직천 숙(直川叔)으로 하여금 시권을 들이게 하고 다시 『연집』에서 찾아 또 한 수가 있기에 군이 또 시권 부본을 써서 올렸는데, 다만 금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또 도와서 이루기를 면치 못했으니 부끄러울만했다.
곧바로 먼저 나왔는데, 반촌 길 위에 서 보니 (시권의) 외작(外作)의 횡행함이 낭자하였으니 더욱 우스울만했다. 저녁 상간에 듣기에 대전(大殿)께서 춘당대(春塘臺)에 나와 계시다가 동쪽 담장을 오르내리는데, 반중(泮中)의 외작한 시지가 횡행함을 보고 더러는 유건을 쓰고 더러는 군복을 입힌 어전별(御前別) …… 무예군(武藝軍)에게 여러 관사를 두루 살피게 했고, 글을 짓는 것을 보기만 하면 반드시 어명으로 붙잡아 1, 2 시소에서 형조(刑曹)로 이송된 유생이 무릇 30여 인이라고 했다. 영남의 벗들 또한 그 가운데 많이 들어갔으니 탄식할만했다. 과장 안의 접들을 모두 철거하고 나가게 하여 예전처럼 할 수 없었으니 내일 일을 또한 자세히 알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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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二十九日。
早起入場。接中頗寬而近。坐見懸題。亦無慮。而被隣接人侵削。少輩方事爭詰。未及張紙開硯。而書題已揭。卽就之如日。望之如雲。料所在棣華。開卷輒遇。使哲君更覓蓮集云不在。遂寫呈。而筆體太縮。雖不大作過。而文古而筆又怪。何可萬一耶。使直川叔納卷。更覓蓮集。又有一首。哲君又寫呈副件。非徒不能禁。又不免助成。可愧耳。卽先出來。見泮村道上狼藉以外作橫行。尤可笑。夕間聞大殿出次春塘。東墻上下。見泮中外作試紙之橫行。御前別▣…▣【缺】武藝軍。或儒巾。或軍服。遍察于諸舍館。見作必以御命執捉。一二所移刑曹之儒。凡數三十餘人云。而嶺中知舊。亦多入其中。可嘆。場內接。皆令撤出。不得仍舊。明日事。又可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