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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AC+K09+KSM-WM.1864.4717-20170630.01031020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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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864년 7월 26일 / 高宗 1 / 甲子
내 용
아침 식사 전에 무리를 따라 절일제 과장 안으로 들어갔다. 뜰에는 이미 어제 저녁부터 우산을 설치하여 지키는 접(接)들로 남은 땅이 없었다. 이 또한 전에 없던 일이나 영남 유생이 처음으로 시작한 것이다. 응춘(應春)의 무리가 문으로 들어가 가까스로 회화나무 아래 아주 작은 자리를 구했는데, 처음에는 매우 멀다고 느껴졌다. 오후 늦게 방외의 선비들이 모두 들어와서 모두 문 밖 및 벽송정에 앉았다. 무릇 과장에는 정과(庭科)에서 가장 심하다고 한다.
시관(試官)이 오후가 되도록 들어오지 않아 많은 선비들이 피곤했는데, 또한 설과(設科)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날이 저물어 시관이 왔는데, 명관(命官)은 홍문제학 조석우(曺錫雨)이고, 수권관(收卷官)은 도승지 조병협(趙秉協)과 대사성(泮長) 이(李)라고 했다. 시제가 출제되었는데 도영화기(導迎和氣)와 기축장락(祈祝長樂)으로, 시험장에 간 모든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했다. 시상(時象)에 관한 근래 전교의 말로써 대충 얼버무려 지어냈다. 나와서 이원진(李元振)을 만났는데, 근래 태학에서 소장하고 있는 정조의 문집을 빌려 보았는데, 그 가운데 장락가(長樂歌)는 이 두 구절에 있어서 그는 이해를 하고 일찍 내었다고 하니 붙을 가망이 있겠지. 대개 정조가 자전(慈殿)을 축하했는데, 자전이 거처하는 궁궐의 이름이 장락(長樂)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 동조의 전교에 귀복으로 이끄는 축원이 있어 오늘 시제로 보답된 것이라고 했을 뿐이다. 선비들은 모두 시험장에 들어갔는데, 반촌의 관리들은 또 간극을 엿보고 방외로 흩어져 나갔다. 종숙부는 종일 사람을 보지 못해서 매우 적막하게 하루를 보냈다고 하니 우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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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二十六日。
朝前隨衆。入節製場中。內庭已自昨夕設雨傘。守接無餘地。此又前所無之事。而嶺儒創始者。應春輩入門。僅得片地於槐木下。初甚遙遠。晩後坊外士盡入來。皆坐於門外及碧松亭。大抵場中甚於庭科云。試官至午後不入來。多士見困。亦設科初有。日幾斜。試官入來。命官弘文提學曺錫雨。收卷官都承旨趙秉協泮長李云。題出導迎和氣祈祝長樂。擧場皆不知解。以時象近日傳敎中語。含糊製投。出見李元振。近日借見太學所藏正廟文集。其中長樂歌。有此二句。渠則知解早呈云。可有望耶。盖正廟祝慈殿。而慈殿所居宮名爲長樂。故近日東朝傳敎。有導迎歸福之祝。故今日題爲報答云耳。士子則盡入於場中。泮村朝士。又以伺間隙。散出坊外。從叔父終日不得見人。甚寂寞遣日云。伏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