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문중 자료 > 일기 > 임천청액일기(臨川請額日記) > 01권 > 1864년 > 7월 >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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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AC+K09+KSM-WM.1864.4717-20170630.01031020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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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864년 7월 24일 / 高宗 1 / 甲子
내 용
위양(渭陽)을 뵈러 갔는데, 강난형(姜蘭馨)이 들어오는 것을 처음으로 보았다. 강이 이르길, "밖의 뜬소문에 내가 시망에 올라 몇일 동안 사람을 응접한다고 하니 가히 어려운 상황을 만났다고 할만 합니다. 밤새도록 잠을 이룰 수 없어 먼동이 틀 무렵 조금 잤습니다. 이와 같으니 어떻게 보내겠습니까. 또 이러한 소문은 반드시 대원군의 귀에 들어갈 것입니다. 나를 시망(試望)에서 떨어지게 하는 것은 영남유생입니다. 무릇 세도가 어찌 새로워질 수 있고 선비의 풍습이 혁파될 수 없겠습니까. 한양의 선비만이 부끄러움을 알고 영남 유생은 변화시키기가 어려우니 어찌 한심하다고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했다.
저녁에 들었는데, 6일 명륜당에서 칠석과(七夕科)를 설치했는데, 친림하지 않았다는 것을 들었으니, 전날에 응제(應製)라고 운운한 것은 외방의 떠도는 말이라는 것을 알만하다. 박주운(朴周雲)은 상소하여 과거의 폐단과 시무(時務)를 논했다. 요즘 서인이 소란을 일으키니 소위 영남의 진신 몇 사람이 감히 한 말을 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서로(西路)에서 행한 바를 떠넘기는 것이 단지 이것은 긴요하지 않는 말로 중요한 것을 해치니, 매우 수치스럽다. 대원군이 영남 사람을 보고 말하길, 박주운의 근래 양태부(梁太傅) 가의(賈誼)[한 문제 때의 문신]의 소(疏) 같은 것을 올렸다고 운운했는데, 모르겠지만 조롱하는 말이 아니겠는가. 비답에는 단지 절실한 것을 진술한 바이니, 마땅히 마음에 둔다고 제사를 내렸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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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二十四日。
往見渭陽。新見姜蘭馨入來。姜之言云。自外浮言指我有試望。數日接應。可謂所遭。終夜不得寢。只昧爽時一場睡。如此而何可遣。且此奇必入於大院君之聞。罷我試望者嶺儒也云。大抵世道寧可新。而士習不可革。京儒猶知恥。而嶺儒難使變。豈不大可寒心耶。夕時聞以六日設七夕科於明倫堂。不親臨。可知前日應製之云。爲外方浮傳耳。朴周雲上疏。論科弊及時務。際此西人起鬧。所謂嶺南搢紳幾人不敢出一言。而讓與於西路爲。只此不緊之言干要之事。極是羞恥。大院君見嶺人云。朴周雲近日上梁太賈誼疏云云。未知非嘲語耶。批答則只以所陳切實。當念題下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