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문중 자료 > 일기 > 임천청액일기(臨川請額日記) > 01권 > 1864년 > 7월 >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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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AC+K09+KSM-WM.1864.4717-20170630.01031020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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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864년 7월 16일 / 高宗 1 / 甲子
내 용
밥을 먹은 후에 방외(坊外) 유생들이 복합하였는데 대원군(大院君)이 승정원에 곧바로 상소를 받아들이라고 명령하였다. 승정원 하리가 분부하여 말하기를 "유생 몇 사람은 따라 들어오고 너희들은 받아들일 수가 없다."라고 하였다. 궐에 들어간 유생 5명을 독촉하고 재촉하니 마치 읍민(邑民)이 소장을 올린 것과 같았다. 종일 그들로 하여금 소를 읽지 못하게 하고 뜰 아래 세워놓고 비를 맞으면서 피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해가 질 때 비로소 당에 올라가서 상소를 읽게 하였는데 승정원 하리들이 사방에서 에워싸고 급히 읽을 것을 독촉하고 문이 장차 닫히려고 하였다. 유생들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하여 상소를 다 읽지 못하게 하고 쫓아 보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날 또 그들로 하여금 비답을 받게 하였는데 종일 승정원 뜰 햇볕에 세워놓고 저녁에 비답을 내주니 그 당한 모욕을 견줄 데가 없었다. 그러나 비답도 결국에는 합당하지 않을 것이다. 대개 대원군은 오로지 글을 알지 못하고 문자로 주장하는 자를 분쟁의 빌미라고 하였는데 끝내 비답 중에도 그 내용이 있으니 마음이 아팠다.
오늘 이휘병(李彙炳)이 상소에 관해 거부하는 비답을 받았다고 하는데 도리어 글머리가 격식에 어긋난 것을 가지고 승정원에서 추문할 것을 계사하고 2번째 도목정사에서 후보자로 추천되지 못하였다. 이 사람은 서울에 올라 온지 몇 달이 지났으나 한 번도 벼슬을 하지 못했다. 이 일에 열중하였기 때문에 도리어 추문을 당하니 우습고 가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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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十六日。
食後坊外儒生伏閤。大院君命政院。卽奉入。而分付院吏曰。儒生幾人。隨入。汝等勿假借云云。其入闕儒生五人。驅督疾趨。便若呈訴邑民。終日不使讀疏。丨之庭下。冒雨不許避。至昏時。始使上堂讀疏。而院吏四環督急讀。門將閉矣。儒生不能守魄旣讀。可謂逐送。其明日。又使受批。而終日暴立於政院庭。至夕後出給批。其受辱無比。而批答則畢竟有不合意。盖大院君專不識文字。而主文者是囮圭。故終置于於批旨之中。可痛。是日李彙炳上疏受優批。而旋以頭辭違格。院啓請推告。將二都目不得擬望云。盖此人上來凡幾月。不得一番付職。故爲此熱中之事。反被推告。可呵又憐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