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문중 자료 > 일기 > 임천청액일기(臨川請額日記) > 01권 > 1864년 > 9월 >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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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AC+K09+KSM-WM.1864.4717-20170630.01031020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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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864년 9월 21일 / 高宗 1 / 甲子
날 씨 맑다.
내 용
임하(臨河) 도청(都廳)이 돌아간다고 고하였다. 그의 둘째의 혼인이 내달 초에 있어서 형세 상 만류하여 머무르게 할 수 없어 큰 길에서 송별했다. 술을 사서 전별하고 들어오니, 섭섭하고 허전함이 매우 심했다. 고향 가는 인편으로는 이 사람보다 확실한 자가 없으나 여러 날 회유(會儒)들을 전별하고 돌려보내는 소란으로 눈코 뜰 사이가 없어서 정회(情懷)를 쏟을 겨를이 없었으니, 조용한 뒤가 더욱 서운하고 한스럽게 느껴졌다.
저녁에 참판 한계원(韓啓源)이 문안을 왔다. 비록 반촌(泮村)의 호신(呼新) 길에 들렀으나 예전에 슬쩍 지나치던 것과 비교니 오히려 이것은 특이한 일이었다. 나는 하실(下室)에 있어 나아가 보고 싶지 않았지만 얼마 있다가 보기를 청하기에 잠시 얼굴을 보았다. 설익은 어설픈 모습이 가관이었고, 외면은 관대함을 빌렸으니 더욱 미울만했을 뿐이다. 교리 오덕영(吳德泳)이 저녁 식사 후에 잠시 방문했다가 갔는데, 틈을 내지 못해 아직 정성을 다하지 못하여 죄송하게 여겼다고 하니, 그 말이 감동할만했다. 교리 채동술(蔡東述)은 횃불을 들고 왔는데, 반중(泮中)에서 종일 지내다가 돌아가는 길에 방문하여 매우 도리가 아니라고 거듭 스스로 송구스러워했다. 전날 즉시 들어온 이유를 말하는데, 다정하게 이야기하며 수작하는 것이 비록 사랑스러웠으나 경박한 행동은 그 선조들이 남긴 모습이 아니었고 또 보니 원대한 그릇도 아니었다. 그러나 나이는 겨우 각(角) 조카와 동갑이니, 장래를 어찌 알 수 있겠는가. 요컨대 이 아이는 시골 출신의 젊은이인데, 일찍이 성공하였을 뿐이다.
문약 어른(文若丈)이 종로 거리에서 인마를 잃어버려 한없이 염려하다가 이윽고 강변에서 찾아 만나 갔다고 하니, 우스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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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二十一日。
晴。臨河都廳告歸。以其仲子婚日在來初。勢不可挽止。送別於通衢。沽酒以餞而入來。悵缺殊甚。鄕便莫此之的。而數日會儒餞歸之擾。眼鼻莫開。無暇寫情懷。靜後尤覺悵恨。夕時韓參判啓源來問。雖泮村呼新行歷入。而比前戛過。猶是異事。余在下室。不欲進見。少間請見。故暫爲見面。生格可觀。外面假款。甚可憎耳。吳校理德泳夕後暫尋而去。以未乘間隙。姑不得效誠。爲悚甚云。其言可感。蔡校理東述擧燭而來。終日於泮中歸路歷訪。甚非道理。屢屢自悚。發明前日未卽入來之由。款悟〖語〗酬酢。雖可愛。而輕薄擧止。大非其祖遺典。且見非遠大之器。然年才與角侄同甲。將來何可知耶。要之■(皆)此鄕曲兒少。爲夙成耳。文若丈於鍾衢違失人馬。聞用無限愁慮。尋遇於江邊而去云。鄕曲愚疎盡綻露。可笑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