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문중 자료 > 일기 > 임천청액일기(臨川請額日記) > 01권 > 1864년 > 9월 >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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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AC+K09+KSM-WM.1864.4717-20170630.01031020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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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864년 9월 19일 / 高宗 1 / 甲子
날 씨 맑다.
내 용
과거는 어제 이전에 매우 공정하고 사사로움이 없을 것으로 정해졌었다. 대원군 어른(大院丈)이 들어와서 듣고서 등수를 이미 정한 후인데 두 시험장에서 각각 30명에게 서두(書頭)와 명호(名號)를 쓰지 말라고 분부하였고 다만 성명을 써서 내게 했다. 시관(試官)이 어쩔 수 없이 선발한 것을 뒤집고 봉한 것을 열어 이름을 보았다. 아침 먹기 전에 궁궐에 부르고 오시(午時)에 끝났다고 한다. 사람으로 하여금 지붕만 쳐다보게 하였다. 이전에 대비의 신칙(申勅)이 위압적이어서 무심히 소홀히 하였지만 끝내 견디지 못하고 이러한 조치를 하였다. 결국에는 이 일이 좋게 되지 않을 것이니 매우 근심스럽고 근심스럽다.
오후에 시관이 궁궐에 들어가 밤 4경에 이르러서 일을 마치고 나왔다. 친구 중에 오직 해저(海底) 내극 형(乃極兄) 뿐이었고 소천(召川) 정창석(鄭昌錫)하회(河回) 2명, 우천(愚川) 유 대감의 손자, 경주(慶州) 손상준(孫相俊), 양동(良洞) 이희구(李熙久), 고령(高靈) 김사묵(金思默)의 손자 이 외에 서울에서 승학(升學)에 있는 자와 어떤 어떤 성이라고 될 만 한 자도 하나도 남김이 없었다. 그리고 나머지는 모두 벼슬을 하지 않은 자이다. 대원군의 두루마리 외에는 시관이 각자 뽑고 싶은 자로 충원하고 그 나머지는 곧 공정하게 나누었기 때문에 혹 우연히 합격한 자도 있다고 한다. 듣기에 해가 떨어질 때 봉하고 끝에 붉은 실로 당겨 묶은 것이 수 없이 나왔다고 한다. 이는 곧 처음에 시험친 자를 선출하고 도리어 번복한 자는 버린 것이다. 천둥으로 경고해도 또한 어찌할 수 없구나. 누가 바로잡을 수 있겠는가. 근심되고 탄식스럽다.
김 자형(金姊兄), 김공백(金公伯)은 더욱 가엾게 되었다. 노인 중에 과연 방에 붙고 현옥(懸玉)한 자가 79명이라고 한다. 저녁 때 종형주(從兄主)가 들어 왔으니 기쁨을 헤아릴 수 없다. 또 오는 중에 더러움이 매우 심하지 않았고 기력도 강건하니 더욱 다행스럽다. 그리고 온 집안에 대해 먼저 들으니 한결같이 평안하고 가을걷이 일도 이미 마쳤고 거두는 것도 풍년이라 하니 이 외에는 다시 더할 것이 있겠는가. 기쁘고 위로된다. 종형이 잠시 쉬고 옛 주인집에 갔는데 형세 상 그러하지 않을 수가 없었으나 조금 거리가 떨어지게 되니 근심스럽다. 정연(定軟)을 가서 보고 밤 후에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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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十九日。
晴。科事昨日以前。以極公無私敦定矣。大院丈入來。聞編次已定之後。兩所各以三十人。分付無書頭無名號。只以性名出來。試官不得已更覆所選。坼封覓名。朝前詣闕之令。退以午時云。令人仰屋。蓋日前爲東朝申勅所壓。有無心一簡。而終不能耐。有此擧措。畢竟做不得好事。大悶大悶。午後。試官詣闕。出至夜四更畢■度。而知舊中唯海底乃極兄而已。召川鄭昌錫及河回二人。愚川柳■台之孫。慶州孫相俊。良洞李熙久。高靈金思默之孫。此外則京中升學所付者。及某某姓可爲者。無一漏。而餘皆無行啣者。蓋大院君周紙之外。試官各充所欲。其餘則公播。故或有偶參者。聞落日中。合封尾紅絲貫繫者。無數出來。此則初選而還覆中見棄者也。雷警亦無可奈。則誰可挽回也。憂嘆憂嘆。金姊兄金公伯尤爲寒心。老人果付榜懸玉七十九人云耳。夕時。從兄主入來。欣喜可量。且見路垢不甚上。氣力頗健。尤幸。而家間先聞一例平安。秋事亦已了。收登豊。此外更何加。喜慰喜慰。暫憩往舊主人。勢不得不然。而稍間可悶。往見定軟。夜後還來。

주석

승학(升學) : 4학(四學)에서 올라온 학생, 하재(下齋)에 거함. 현옥(懸玉) : 통정대부(通政大夫)의 품계(品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