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문중 자료 > 일기 > 임천청액일기(臨川請額日記) > 01권 > 1864년 > 9월 >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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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864년 9월 18일 / 高宗 1 / 甲子
날 씨 맑다.
내 용
식후에 중현(仲賢)이 방외로 나갔는데 친구 어떤 사람들이 모두 중국 사신과 과거로 시끄러움이 지난 후에 말하자고 약속하였으므로 만나서 신신당부할 계획이라고 한다. 생각건대 종형주(從兄主)는 혹 오늘 내일 사이에 들어올 것 같으나 오는 중에 탈이 없는지는 알 수 없어서 근심되고 답답함을 그칠 수가 없었다. 내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계획은 반드시 돌아가는 종을 통해서 내려가고자 하였으나 종숙부(從叔父)와 소청(疏廳) 여러 명에게 누차 말하였지만 잠시도 허락할 뜻이 없었다. 그러나 마땅히 종형주와 상의하여 곧 출발할 계획이나 종숙부께 곧 허가를 받지 못하였으니 어떻게 마음을 돌릴지 모르겠다. 답답할 뿐이다.
향촌의 추수는 생각건대 끝나지 않았을 것 같은데 가끔 비가 오니 곧 자주 내리는 비가 가을장마가 되었으니 혹 먼 지방까지 장마가 미치지 않는다면 다행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고르게 비가 내린다면 그 재앙이 또한 적지 않을 것이니 어찌 하겠는가.
듣기에 채동술(蔡東述)이 들어와서 병산서원 측 숙소를 두루 방문하고 갔다고 한다. 그는 몰지각한 사람이니 다른 사람에게 막혔다는 것을 알만할 뿐이다. 하양(河陽), 하동(河洞)의 회유(會儒)들이 돌아가겠다고 고해서 관아에 보내는 편지를 써서 부쳤다. 듣기에 어제 천둥 벼락 쳤을 때 대비와 임금이 모두 놀라서 급히 조성하(趙成夏)를 불러 입시(入侍)하게 하였다. 대비가 하교하여 말하기를 "어찌하여 하늘의 변고가 2번, 3번에 이르는가. 이 죄는 필시 나에게 있다. 나에게 죄가 있는데 너는 곁에 있으면서 힘써 고하지 않았으니 너 또한 죄가 있는 것이다. 하물며 너 또한 스스로 죄를 저질러서 나의 죄를 더 심하게 한 것이 아닌지 어찌 알겠는가. 이 무슨 까닭인가."라고 하였다. 간절하고 두려운 말씀으로 감격할 만 하였고 조성하는 땀이 나서 등을 젖어서 물러났다고 한다. 대원군 어르신(大院丈)이 이때 남한산성(南漢)을 유람하고 있었는데 이 지극한 뜻을 생각이나 하는지 모르겠다.
중현이 돌아와서 "이른바 이승보(李承輔)의 교만한 태도는 전과 비교해 또한 배로 높으니 결단코 다시 만나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고 오 교리(吳校理)는 ‘대원군이 들어오기를 기다려 틈을 타서 주선하겠습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라 하였다. 그러나 또한 그는 시류배니 어찌 믿을 만하겠는가. 오후에 이중억(李仲嶷)이 들어왔다. 형주(兄主)의 행차 소식은 조용하여 들을 수가 없으니 답답할 뿐이다.
김낙후(金樂後), 김희민(金希民), 권천경(權天經)은 모두 소유(疏儒)인데 장차 내일 회유들과 함께 내려갈 계획이라고 하니 소청에서 허락하였다. 경비를 주는 것이 어려울 것 같으니 근심스러울 뿐이다. 김문약(金文若) 어르신이 또한 아들의 혼사로 근심스럽다고 말하니 만류하지 못하고 또 내려 보내려고 하니 그 모습이 매우 뭐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탄식되며 근심스럽다.
저녁을 먹은 후에 회유들이 공백(公伯)의 숙소에 모여서 내일 장차 떠나니 함께 앉아서 이야기를 하자는 말을 전했다. 달빛을 받으며 올라가 잠시 참여하고 왔다. 모인 여러 사람들에게 나의 사정이 어쩔 수 없어서 종형이 올라온 후에 그를 대신 의무를 지게하고 내려갈 뜻을 말하니 원진(元振) 무리들이 모두 "형께서 반드시 가고자 한다면 다른 사람들이 어떠한 까닭으로 유독 뒤에 남겠습니까. 소청이 절로 없어질 것입니다." 라고 하였고 공백은 곧 의리로 나를 타일렀으나 끝내 마음이 맞지 않고 모임을 마쳤다. 그러나 오직 종숙의 마음을 돌리는데 달려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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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十八日。
晴。食後。仲賢出去坊外。蓋知舊某人。皆約以勅科經擾後言之。故爲見申托計也。從兄主計。或於今明間入來。而中路無頉未可知。慮■鬱不已。余歸計。必欲因其回奴下去。而屢從叔父及疏廳諸員。而姑無變通之意。然當與從兄主相議。卽發計。而從叔父前。則不可受許。而可未知何以回聽也。伏悶耳。鄕間秋收。計似未了。而種種雨來。便成秋霖以其驟。而或不遠放。則可幸。而若均被。則其災又不小。奈何。聞蔡東述入來。徧訪屛館而去云。其沒知覺人。被他阻搪。可知耳。河陽■…■河洞會儒告歸。書付衙書。聞昨日雷震時。東朝大殿俱爲震驚。急召趙成夏入侍。東朝下敎曰。此何天變。至再至三也。罪必在寡躬。寡躬有罪。而汝爲在傍不告勉。則汝亦有罪。況安知汝又不自作罪。以添寡躬之罪耶。此何故也。懇惻敬畏之敎。足令感泣。趙汗出沾背而出云。而大院丈時在南漢遊樂。未知肯念此至意也。仲賢入來。所謂李承輔驕態。比前又倍高。斷不欲更見。而吳校理謂。俟大院君入來。有隙周旋云。然亦是時輩。何可信耶。午後。李仲嶷入來。兄主行聲。寂然無聞。可鬱耳。金樂後金希民權天經皆疏儒中人。而將以明日偕會儒下去計。疏廳許之。蓋難於供費。可悶耳。金文若丈亦以其子婚告悶。不能挽止。又將下送。貌樣極是無謂。嘆悶嘆悶。夕後。諸會儒會于公伯館。傳■言明將作別。共榻敍話。乘月上去。暫參而來。諸會中更申吾情勢不得不。於從兄上去後。代立下去之意。元振輩皆云。兄若必欲去。則他人何故獨後。疏廳自罷。公伯則諭以義理。竟不合而罷。然惟在從叔回意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