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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864년 9월 17일 / 高宗 1 / 甲子
날 씨 잠깐 비가 내리고 흐리다.
내 용
밥을 먹기 전에 시문(柴門)에 들어가다가 밖으로 나가 공백(公伯)과 외종(外從)을 보고 문으로 들어가서 원촌 형(遠村兄)을 찾았지만 서로 보지 못하여 한스러웠다. 비가 내릴 조짐이 있어 곧 나왔다. 날이 저물자 비가 내리고 개었다. 여러 벗들을 만나기 위해 시험장에서 나와 동료들과 함께 벽송정(碧松亭)에 올랐다. 공백(公伯)이 나와서 의제(義題)는 "내가 들으니, 지극한 정치를 하면 향기롭다[我聞曰至治馨香]."라고 하였는데, 만난 것에는 ‘아문왈(我問曰)’이 없었다. 내가 다시 지은 것은 곤욕을 면치 못해서 내 마음에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하였다. 하지만 또한 운수에 달려있는 일이니, 어찌 마음 쓸 것이 있겠는가? 의제(疑題)에 대해서는 벗이 본 것이 없기 때문에 알지 못했다. 원 형(遠兄)은 어떻게 지어서 올렸는지 마음이 답답할 뿐이다.
오후에 우레가 치고 비가 많이 내렸다. 천둥소리에 땅이 파일 것 같았다. 대게 괴이한 일이기에 재앙이 아니라고는 할 수 없으니 근심과 두려움을 견줄 수 없었다.
듣건대 달민(達民) 형이 들어와서 의제(義題)가 「예호례(禮乎禮)」였는데, 무릇 6수(首)를 넘었다고 하였다. 그중에 가장 잘 쓴 것을 고르니 김 진사(金進士)가 초한 것이었는데, 그것을 써서 올리니 매우 가망이 있어 다행이고 다행이었다고 하였다. 이소(二所)의 의제(疑題)는 "『대학(大學)』 「성의장」 위에 격물치지를 잇지 않고 아래에 정심과 수신을 접하지 않은 것은 어째서인가?[誠意章上不承格知。下不接正修者。何也。]"라고 물었다고 하였다. 처음과 끝의 상세함을 알지 못할 뿐이었다.
대원(大院) 어른이 남한산성에서 유람을 하는데, 듣건대 집안에 둔 일만 이천 냥의 돈을 옮겨 가서 나눠서 수요품을 마련할 자금으로 삼았다고 하였다. 이 외에 수령이 제공한 해당 경비가 얼마나 많겠는가? 뇌우가 이와 같으니, 하늘이 공평하기 때문에 이것으로 흥패의 조짐을 삼는 것이 아닌 줄 어찌 알겠는가? 대개 대원(大院)은 무릇 과실을 범하여 옛 세도(世道)의 틀을 답습(蹈襲)하지 않음이 없으니, 그의 무식한 소견은 대원군이 궁복(窮伏)한 시절에 모욕스러운 상황을 실컷 맛보았음을 알만하니 걱정되고 탄식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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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十七日。
乍雨而陰。食前。入去柴門外。見公伯及外從。入門。遠村兄覓。不得相見。可恨。有雨意。旋出來。日晩雨晴。爲見諸知舊出場。同儕伴登碧松亭。公伯出來。而義題我聞曰至治馨香。所遇無我問曰。更作未免困了。不滿意云。然亦在數之事。何足爲意耶。疑題知舊無見者。故未得知。遠兄如何作呈。可菀耳。午後雷雨大作。聲震若陷。蓋是怪事。不可謂非災。憂懼無比。聞達民兄入來。而義題禮乎禮。凡過六首。而擇其最善者。金進士所草。書呈。頗可望。幸幸。二所疑題。問大學誠意章上不承。格知下不接。正修者何也云云。未能知其終始之詳耳。大院丈南漢之遊。聞運去家藏一萬二千兩錢。爲辨需之資云。其外主守之所供當費。幾何萬也。似此雷雨。安知非天公故作敗興耶。蓋大院之凡干做措。無非蹈襲舊世道之套。可知其無識所見。洽喫唾頤於窮伏之時也。悶嘆悶嘆。

주석

지치형향(至治馨香) : 『서경』 「군진(君陳)」에 “지극한 정치를 하면 향기로워서 신명에게도 감응이 되는 법이니, 서직과 같은 곡식의 제물이 향기로운 것이 아니라 밝은 덕의 제물이 향기로운 것이다.〔至治馨香 感于神明 黍稷非馨 明德惟馨〕”라는 말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