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문중 자료 > 일기 > 임천청액일기(臨川請額日記) > 01권 > 1864년 > 9월 >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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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AC+K09+KSM-WM.1864.4717-20170630.01031020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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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864년 9월 12일 / 高宗 1 / 甲子
날 씨 맑다.
내 용
아침식사 전에 어제 소유들이 방외에 차례대로 왕래하자는 의론을 어찌 금하고 떨치지 못하여 점점 막기 어려운 길을 여느냐고 고하였다. 종숙부와 사첨 씨(士瞻氏)가 모두 내가 너무 융통성이 없다고 말하기에 내가 말하기를 "의리는 고사하고 일하는 도리가 이와 같을 수는 없습니다. 유림의 일에 먼저 자신의 신조를 잃어버리고서 어찌 남에게 추중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중현(仲賢) 한 사람으로도 이미 충분하니 회중(會中)에 어떤 사람이 이 자보다 나을 수 있겠습니까? 시류배를 압도할 수 있는 자입니다. 결코 이익은 없고 도리어 치욕스럽기만 하니 이 같은 의론은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어떠합니까?"라고 하였다. 종숙부가 매우 옳다고 여겨 의론을 억누를 수 있었다. 내가 말하기를 "종형주가 올라온 뒤에 하직하고 돌아가지 않을 수 없었는데, 만약 소청에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을 전송하는 비용을 구한다면 또 대신 머무르는 자에게 더 거둘 것입니다. 돌아갈 때 내가 모쪼록 돈을 빌려 스스로 준비하여 떠난다면 후일에 언설(言說)이 없을 것이니, 원컨대 금지하지 마십시오."라고 하니, 종숙부는 확고하여 허가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침저녁 사이에 어찌 생각을 돌릴 방법이 없겠는가? 중현과 사첨 씨는 도리어 화를 내니 우스울 만할 따름이다.
듣건대 본쉬가 심처(深處)와 긴밀하다고 하니 대개 오입(誤入)했을 때 절친하여 이술(而述) 어른이 한번 만나기를 권하자 중현(仲賢)도 호 장(湖丈)과 더불어 가서 만나고자 했다. 생각건대 이 주쉬는 안동사람과 다름이 없어서 다른 서울에 있는 귀족들과는 차이가 있어서 김문약(金文若) 어른 또한 힘을 바쳐 출입할 생각이 있다. 공백(公伯)이 또 여러 번 말했지만 다른 곳에는 허락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는 크게 혐의되고 방해되는 것으로 여길 필요가 없기 때문에 종숙부에게 고하여 함께 가게 했을 따름이다. 듣건대 칙사가 일찍 출발하여 이른 새벽에 임금의 수레가 전별하는 자리에 나와 연조문(延詔門) 동단(東壇)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연향(燕享)하는 백관은 때에 앞서 모화관(慕華館) 밖 큰길 옆에서 엎드려 기다려 전송하고 칙사가 만약 말에서 내리면 모두 재배하고 보내려했지만 그는 다만 손을 들면서 "국왕을 받들고 잘 있으라."고 운운했을 따름이다.
성 안에 땔감 값이 점점 높아져서 이전에는 말죽을 한때 끓이는 데에 드는 땔감이 4푼속이었는데 지금은 6푼속이어서 죽을 푹 끓일 수가 없으니 매우 근심스러운 일이다. 말이 내려가기 전에 올라올 때의 모습을 보전할 수 없을 것 같다. 쌀값은 1승당 2전이 되는데 이전보다 1전 남짓 떨어졌다고 하니 그 풍년이 들었음을 알 수 있다.
황칙(皇勅) 제문(祭文)을 얻어 보니 "동치(同治) 3년 세차 갑자 9월일에 황제가 정사 호부좌시랑 겸관삼고사무정홍기만주부총조보 부사정백기 한군부도총산질대신충예 가용팔분진국공(正使戶部左侍郞兼管三庫事務正紅旗滿洲副統皁保副使正白旗漢軍副都統散秩大臣忠銳嘉勇八分鎭國公) 문겸(文兼)을 보내어 조선국왕 이(李)의 영(靈)에 유제(侑祭)하노라. 옥책(玉冊)을 내려 조선을 다스리라는 부절을 받아 조선의 계통을 열고 제사 자리에 철(醊)제사를 내려 제물이 향기로우니 북궐(北闕)의 영화를 나누도다. 실어온 공물을 돌아보니 정성이 극진하여 향기로운 제물을 올려 총애를 보이니 칙종(飭終)의 은전이 중하도다. 그대 조선국왕 이(李)는 동방의 나라에서 잘 자라 천실(天室)에서 왕으로 책봉 받아 조종(祖宗)의 신공(辰供)을 본받아 정삭(正朔)을 아뢰어 공경히 받들었도다. 한결같은 정성으로 받아들여 충성을 맹세하고 효순하며 정책을 팔도에 베풀어 동방을 어루만져 복을 이었도다. 해바라기가 해를 향하듯 향하고 튼튼한 뽕나무처럼 영원히 굳건하여 은총을 내려주는 것은 보좌하는 신하에게 오히려 융성하고 풍선한 나눔을 신하에게 같이 입혀졌네. 바야흐로 통역이 뜰에 와 항상 담로(湛露)를 노래하길 기약했는데 어찌 빠른 세월이 갑자기 목숨을 거두어 흘러간 내를 돌이킬 수 없으리라 생각했으랴. 마침내 왕의 부고를 보니 참으로 매우 슬프도다. 은장을 꾸며서 다음 왕을 생각하고 제기를 진설하여 저승에 은택을 내리노라. 아, 대려(帶礪)를 오래 끌어 홍범의 의형을 바꾸지 않고 궤연(几筵)이 이에 환하여 번봉(藩封)에 광총을 더하라. 신령이 안다면 이 좋은 제물을 흠향하라."라고 하였다. 제물은 소 한 마리, 양 한 마리, 돼지 한 마리인데 다만 내장을 제거하고 털을 벗겨 전체를 상에 올렸다고 하였다.
듣건대 감시(監會)의 회시(會試)를 공정하게 행하는 것으로 결단했지만 의론이 어떤 항렬의 이름을 방(榜)에 넣고자 하지 않는다고 한다. 대저 이른바 공정하다는 것이 결국 개인의 뜻을 행하려는 것이니 이 어찌 도리이겠는가? 중현(仲賢) 제행이 들어왔는데, 본쉬가 주선할 뜻 없이 말하기를 "대원군의 앞에서 누가 감히 묻지 못한 말로 입을 열겠는가? 만약 그 뜻을 알지 못하고 감히 스스로 말을 어떤 일이든 막론하고 꺼냈다가 혹 긴치 않게 여기는 기색을 받게 된다면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여 앞길이 깜깜할 것이니 어찌 이를 하려고 하겠는가?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모두 그렇다. 다만 혹 받아 들어준다면 마땅히 극언할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모르겠지만 어찌하여 이처럼 두려워하게 한 것인가? 바로 높고 높은 대원군을 만나고자하는 것을 스스로 굽힌 것일 뿐이니, 어찌 대원군의 정기가 사람을 압도하는 것이 이와 같단 말인가? 도리어 슬퍼할 만한 부류라는 생각이 들 뿐이다.
호장(湖丈)이 또 방외에 나가고자하기에 내가 말하기를 "장인(丈人)께서 몇 번 행차하셨는데 무슨 효과가 있었습니까? 소청(疏廳)의 무리가 굴욕을 당할 뿐만 아니라 장인은 백수(白鬚)의 연세이고 법문의 사람인데 공연히 젖비린내 나는 교만하고 어리석은 무리에게 배알하러 가니 이 무슨 사체(事體)입니까? 중현(仲賢)은 이미 본손(本孫)으로서 왕래하는 자이기에 중지할 수 없으니, 그 한 사람이면 충분합니다."라고 운운했다. 호장(湖丈)이 말하기를 "그대는 어찌 고지식한가? 지금 세상에 일을 하는 자가 이것을 욕됨으로 여기고서 어떻게 일을 성사시킬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내가 말하기를 "이와 같이 하여 일을 성공시키는 것은 해서는 안 되는 것인데 하물며 이와 같이 하고서 일을 성공시키지 못한다면 무엇 때문에 행동만 더럽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호장이 말하기를 "공론이 만약 모두 긴하지 않다면 내가 어찌 함부로 가겠는가?"라고 하였다. 종숙부와 중현이 모두 한마디도 금하기를 권하지 않았다. 마침내 가지 않게 되었지만 내가 당돌하여 도리어 매우 편치 않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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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十二日。
晴。朝前告以昨日疏儒輪次坊外之議。何不禁拂。而漸啓難遏之路耶。從叔父及士瞻氏皆謂太膠柱。余曰。義理姑舍。做事之道。不可如是。儒林之事先失己。而何以見重於人耶。一仲賢旣足矣。會中何人能勝於此君。可壓倒時輩者也。斷無益而反恥辱。此等議論。切勿容受如何。從叔父深可之。可以鎭得也。余言從兄主上來後。不可不辭歸。而若索疏廳送歸之資。則又是加徵於代留者。歸時吾則某條貸錢。自備而去。則無言說於日後。願勿禁之。從叔父牢不許可。然朝夕間豈無可回之道耶。仲賢及士瞻氏則還生火症。可笑耳。聞本倅緊於深處。蓋誤入時切交。而述丈權令一見。仲賢欲與湖丈往見。念是主倅。則無異安東人。與他京貴有別。而金文若丈亦有效力出入之意。公伯又累言。而不可許於他處者。然此則不必大爲嫌防。故告于從叔父。令與偕去耳。聞勅使早發。而曉頭大駕出餞次。支待于延詔門東壇。燕享百官。則先時伏待於慕華館外大路傍以餞。而勅使若下馬。則皆再拜以送。而渠則只擧手曰。奉國王好在云云耳。城內薪漸高。前此則馬粥一時所煮薪爲四分束。今則六分束。爲不能熟煮。大是悶事。鬣子下去前。似不得保上來時皮殼耳。米價則一升爲二戔。而比前落下戔餘云。可知其年稔。得見皇勅祭文。維同治三年歲次甲子九月日。皇帝遣正使戶部左侍郞兼管三庫事務正紅旗滿洲副統皁保副使正白旗漢軍副都統散秩大臣忠銳嘉勇八分鎭國公文兼。侑祭于朝鮮國王李之靈曰。璆冊膺符第〖茅〗壤。衍東瀛之緖。雕筵賜醊椒馨。頒北闕之榮。眷琛賮之輸忱。誼隆柔遠。奠芬苾以示寵。典重飭終。爾朝鮮國王李。育粹海邦。受封天室。效朝〖祖〗宗之〖而〗辰供。稟正朔而寅承。款納一誠。矢丹忠而孝順。猷宣八道。撫靑社而連庥。葵向久傾。桑包永固。晉錫尙隆於陪貳。豊頒同被於臣隣。方期象譯來庭。常詠湛露。詎意駒陰奄戢。莫返逝川。聿覽匭章。良深軫悼。賁銀章而眷懷嗣服。陳瑤俎而沛澤重泉。於乎。帶礪長延。不替儀型於箕範。几筵式煥。受〖爰〗增光寵於藩封。靈其有知。歆玆嘉薦。祭物則牛一羊一豕一。而只去內部脫毛。全體薦于床上云耳。聞監會斷以行公。而議不欲以有行列之名入榜云。大氐所謂公者。畢竟是私意行之。此豈道理耶。仲賢諸行入來。本倅無意周旋而言。大院君之前。誰敢以未問之言。仰視發口耶。若不知其意。而敢自出言。無論某事。如或承不緊之色。則俯不得仰不得。而■前路迷昧。豈欲爲此乎。非獨吾。他人皆然。第或承聞。當極言之云云。未知如何而若是之嚴畏也。直是自屈於欲見彼之嵬嵬而已。豈大院之精魄壓了人如此耶。還思可哀之類耳。湖丈又欲出去坊外。余曰。丈人幾番行。有何效應也。非但疏廳之徒取汚屈。丈人白鬚之年。法門之人。空然就謁於口乳驕蚩之輩。是甚事體。仲賢則旣以本孫往來者。不可中止。一渠足矣云云。湖丈曰。子何固也。今世做事者。以此爲辱。而何以成得事乎。余曰。如此而成事。所不可爲。而況如此而不成事。則何爲徒汚行止乎。湖丈曰。公論若皆不緊。則吾何冒去耶。從叔父仲賢皆無一言勸禁。遂見不行。而唐突還深不安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