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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864년 9월 11일 / 高宗 1 / 甲子
내 용
밥을 먹은 뒤에 도청의 여러 사람들이 내려와서 말하기를, "이전의 충주 전(忠州錢) 10량은 소청에서 모여 이야기하라는 몫으로 보낸 것인데, 그 사이에 먹지 않았기 때문에 말이 있는 듯하니, 한 바탕의 술과 떡을 마련하는 것이 어떠합니까?"라고 하니, 여러 의견이 안된다고 함이 없기에 대략 반촌(泮村)의 친구들 30여원을 청하여 술과 떡으로 베풀어서 주고 마치고 간 뒤 소유들만 뒤에 남았다. 김 진사(金進士)가 상소에 관한 일을 꺼내 논하면서 우선 복합할 기일이 없고 많은 인원이 쓰는 바도 또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자를 마지못하여 기어이 보내는 것을 허락한다고 하였다. 좌중(坐中)에는 돌아가기를 원하는 자가 없었다. 내가 처음으로 일에 이익 됨이 없고 개인적인 상황으로 어쩔 수 없이 먼저 돌아가기를 고했다. 바로 여기 제원들은 모두 집안일을 대신 맡길 사람이 있지만 내가 처한 바는 좌중이 함께 아는 바이다. 만일 한 사람이라도 돌아가기를 허락하는 일이 없다면 감히 나로부터 뜻을 내지 못하나 이미 뽑아 보낸다는 명령이 있다면 사정이 나만큼 절박함이 없으니, 허락을 얻기를 청하였다.
문약(文若)이 말하기를, "형은 곧 절대로 먼저 가서는 안될 분인데 다만 다른 사람을 막아서 한 사람도 돌려보내게 하지 않으려고 한 것이니, 다시 입을 열지 마시오."라고 하며 제원들은 한결같은 말로 말을 꺼내지 못하게 하였다. 종숙부도 마음에 대해 매우 할 수 없다고 여겨 황송해하며 그만 두었다. 그러나 종형이 올라오기를 기다린 뒤에 단정할 계획일 뿐이었다.
중현(仲賢)이 나가서 오 교리(吳校理)를 보고 이르기를, "칙사들을 보내기를 기다린 뒤에 틈을 타 그것을 말하겠습니다. 지나는 길에 일찍이 부탁받은 이 참봉(李參奉)이라 하는 자가 들어가 문안하고 곧 말하기를 ‘일전에 가서 임천 소유들이 여러 달 계속 머물러 대기한다.’고 고했는데 매우 근심스러워한다고 하였습니다. 대원군 어른이 병산은 아직 시행할 수 없는데 어찌 먼저 꺼내겠습니까? 그러므로 감히 다시 말하지 말라고 했습니다."라고 하였다. 흡사 이는 병유(屛儒)들의 목 안에서 나온 것이니, 대개 이 집안은 또한 요긴처로써 일개 변두리 사람이 아침저녁으로 문안하는 곳으로 삼은 것이다. 어찌 마음으로부터 술책을 쓰는 곳이 아닌 줄 알겠는가? 이는 알 수 없다. 만약 과연 실로 이 말을 했다면 격분하지 않고 순순히 들어줄 것이고, 이미 명을 내린 병산서원과 선후를 따져봤을 때 이는 크게 낭패된 일이 아닐 뿐이다.
잠시 뒤 자리에서 또 소유들이 차례대로 돌아가면서 친구들에게 왕래하여 긴요하고 간절하게 마음을 움직이게 하자는 의론이 있었다. 종숙부가 또 가부를 결정하지 않기에 마음이 삼가 걱정되고 한스러웠다. 장자의 논의를 멋대로 끊고 싶지 않아서 말없이 논의에 참여하지 않고 지나갔다.
호칙(胡勅)이 대전(大殿)의 상우(相宇)를 보고 크게 찬탄하여 이르기를, 90을 살 만하고 9년 동안 풍년이 잇달을 것 같다고 하니 만일 떠도는 말이 아니라면 동방에 억만 백성들의 경사일 뿐이다. 문오 령(文五令)이 와서 책봉(冊封)의 글을 외며 말하였다. "조선국 강목왕비(康穆王妃) 첩 조씨(趙氏)가 아뢴 바를 보니, 그대의 총명하고 슬기로움은 국인들이 받들기를 원하기 때문에 너를 조선국왕이라 삼는다."라고 하며, 중간에는 잘 다스리는 것으로 경계하고, 끝에는 너는 공경히 할지니, 짐의 명령을 어기지 말라고 하였다. 삼대 고명(誥命)의 투식을 이 어찌 오랑캐 황제가 참람할만한 것이겠는가? 분하고 탄식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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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十一日。
食後。都廳諸員下來。言前此忠州錢十兩。爲疏廳會話次所送。而其間以不食。似有言說。故爲一場酒餠之供。如何。僉議無不可。略請泮村知舊凡三十餘員。設酒餠以供而罷去後。疏儒留後。金進士發論疏事。姑無伏閤之期。多員所費。亦不可不觀緊。故願歸者。不得不許送云云。坐中無願歸者。余始告以無益於事。而私情不得不先歸。今此諸員。皆有家事代任之人。而吾之所處座中之所共知。若無一員許歸之事。則不敢自■我生意。而旣有簡送之令。則事情無如我之切迫者。請得許。文若曰。兄則萬不可先去者。而只爲阻遏他人。使不得送歸一員。更勿開口也。諸員一辭不使發言。從叔父又甚不可於意。悚惶而止。然要俟從兄上來後。爲斷定計耳。仲賢出見吳校理。謂待勅擾治送後。乘間言之。而歷路有李參奉云者。曾所見托者。入問則言。日前往告以臨川疏儒連月留待。極爲悶然云。則大院丈答以屛山姑未得施行。而豈可先出耶。故不敢更言云云。洽是屛儒項中出。蓋此人家。亦以緊路爲一邊人。朝夕問安之所。安知非從中弄術耶。是不可知。若果實有此言。則不激而順聽。與已成命之屛院。爲較先後則也。是非大敗事耳。俄間座上。又有疏儒輪次往來於知舊。爲緊懇動得之議。從叔父又不可否。心伏悶恨。而不欲橫斷長者之論。故默不與議而過。胡勅見大殿相宇大贊云。壽可九十而九年連豊云。若非浮言。則東方億萬之慶耳。文五令來誦冊封書云。見朝鮮國康穆王妃妾趙氏所奏。以爾聰睿。國人願戴。故以爾爲朝鮮國云云。中間戒以善治。終以爾其欽哉。無替朕命云云。三代誥命之套。是豈胡皇可僭者耶。憤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