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문중 자료 > 일기 > 임천청액일기(臨川請額日記) > 01권 > 1864년 > 9월 >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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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AC+K09+KSM-WM.1864.4717-20170630.01031020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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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864년 9월 9일 / 高宗 1 / 甲子
날 씨 맑다.
내 용
객지에서 맞이하는 중양절은 옛 사람들도 앓던 회포인데, 더구나 가묘에 절천(節薦)을 응당 설행해야 하지만 제사에 참여하지 못하고 병든 수씨와 어린 조카들에게 맡긴 것을 생각하면 죄송한 마음이 객지의 회포보다 더욱 깊었다. 중현(仲賢)이 함께 높은 곳에 오르자고 요청했지만 어제는 가지 않기를 고했다. 종숙부는 무료하게 홀로 앉아 계시는데 나는 산을 올라 액막이 행사[拂除]를 관람 하는 것이 또 한 편으로 편치 못하여, 여러 어르신들이 들어오기를 기다렸다가 종숙부의 이야기 상대를 만들어드린 이후에 술을 사서 북악(北嶽)에 오를 계획으로 삼자고 했다.
식후에 문외(門外)에서 묵었던 여러 행차가 차례대로 돌아 왔는데, 모두 볼 만한 것 없었고 부질없이 수고롭게 움직이기만 했다고 했다. 포시(晡時)가 되어 중현 및 김 자형(金姊兄), 김달민(金達民)과 함께 산에 오르는 길을 떠났다. 여관 주인에게 술을 사서 호리병을 차고 따라오게 하였고, 양 진사(梁進士) 부자도 따라 왔다. 서협문(西夾門)으로부터 올라 성터를 돌아 응봉산(鷹峰山)에 오르니 곧 지금 임금님이 거처하는 궁궐의 주산인데, 동서를 바라보니 이곳이 그다지 높지 않아 눈이 탁 트이게 보이지 않았다.
석대(石臺) 위에 앉아 한참동안 술을 마시고 차를 달인 뒤 여러 사람들은 모두 더 이상 가고 싶지 않아서 각기 스스로 내려갔고, 나는 중현과 함께 걸어서 뒤 봉우리에 올라 성을 따라 북청문(北靑門)에 이르렀다. 북청문은 누각은 없었고 다만 돌문이 성을 통하는 하나의 구멍이었지만 철물로 잠가놓아 여닫지 못했다. 문판에는 신상(神像)을 잡다히 걸어 두고 영당(靈堂)으로 삼았는데, 방여인(方女人)이 소경을 시켜 경문을 읽고 축원하는 것을 보니 매우 우스울만했다. 수문장의 직소에서 잠시 쉬고 이어서 길을 갔다. 우리의 일행이 북악의 가장 높은 곳에 이르니 마음이 두렵고 위태로워지는 것 같아 오래 앉아 있을 수 없었다. 이곳은 대개 옛 궁궐의 정주(正主) 산으로 임한 곳이 정중앙이고 사방이 고르게 트여 있으니 진정한 주산의 자리이다. 지금의 궁궐을 곁으로 보니 장내에 가리는 것이 없고 한쪽 편으로 치우쳐져 전혀 옛터에 미치지 못하니 매우 한탄스럽다.
차를 마신 뒤 사방을 두루 관람했다. 동쪽으로는 원춘도(原春道) 경계까지 다 보였고, 남쪽으로는 관악산(冠岳山)의 여러 봉우리들이 열립하여 빙 둘러싸 우뚝 솟아 있었으며, 서쪽으로 대해를 바라 보내 마치 구름이 쌓여있는 것 같았고, 북쪽으로 삼각산(三角山)을 돌아보니 내룡(來龍) 산줄기가 가파르게 서서 삼엄하였다. 그리고 한강 한 줄기가 굽이쳐 사방을 감싸 안으니 일대 장관이었다. 해가 곧 저물 것을 염려하여 결국 내려와 창의문(彰義門)에 이르러 지나온 길을 올려다보니, 바로 깎아진 벽이어서 도리어 두려웠다. 비로소 평탄한 길로 나아가 궁궐 담장의 뒷길을 경유하여 여관에 들어오니 그다지 저물지는 않았기에 다행이었다. 저녁을 먹은 후 바람과 우레가 크게 일었고, 밤이 깊어진 이후 비가 쏟아지듯 내리면서 우렛소리가 성 안을 진동시키니 사람으로 하여금 떨리고 두렵게 했다. 이는 무슨 징조인가? 우연은 아닐 것이니 근심스럽고 탄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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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初九日。
晴。客地重陽。古人所懷。況念家廟節薦應設。而未能與祭。任使病嫂穉侄。罪竦尤深於客懷。仲賢要與登高。而昨日告止。從叔主無聊獨坐。而吾則登覽拂除。又一不安。要俟諸丈入來。有話伴後。爲買酒登北嶽計耳。食後門外諸行次第還來。皆云無所可觀。而空費勞動云。日晡。與仲賢及金姊兄金達民作登高之行。使主人沽酒。珮壺隨之。梁進士父子又從之。登自西夾門。循城垈。上鷹峰山。卽時御■(闕)闕主山界。臨東西而不甚高。未能快目。坐石坮上。飮酒燒茗。移時後諸人皆不欲前進。各自下去。余與仲賢步上後峯。遵城至北靑門。無樓閣。只石門因城通一穴。鎖鐵無開閉。而門板雜揭神像爲靈堂。見方女人使瞽讀經祝願。甚可笑也。暫揭守將直房因行。行到北岳最高處。心若怵危。不能久坐。此蓋爲舊闕正主。而臨處正中。四方均闊。眞主基也。傍見時闕。宮墻內無遮。而偏寄一邊。似不及舊基。不啻萬里。甚可恨嘆。飮茗後周覽四方。東極原春界。南列冠岳諸峯。環拱竦立。西望大海。如白雲堆。北顧三角。來龍削立森嚴。而一帶漢水彎弓四抱。卽一大觀。慮日力。遂下至彰義門。回仰履歷所來處。直是削壁。還却疎懍。始就坦路。由宮墻後路入館。不甚暮。可幸。夕後風雷大作。夜深後雨下如注。而雷聲動城。令人震懍。此何兆像。非偶然。憂嘆憂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