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문중 자료 > 일기 > 임천청액일기(臨川請額日記) > 01권 > 1864년 > 9월 >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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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864년 9월 8일 / 高宗 1 / 甲子
날 씨 맑다.
내 용
식전에 반촌의 여러 친구 노소들이 일제히 왔다. 그들이 장차 나가면서 빨리 가지고 하니 종숙부는 피곤하고 초췌하다는 것으로 사양했고, 나와 중현(仲賢)은 볼일이 있어서 뒤에 형세를 보고 할 것이라는 말로 사양하며 그들을 떠나보냈지만, 행여 가는 사람들이 믿어줄까 걱정 될 뿐이다.
종형은 20일 전에 들어 올 것으로 생각했다. 왜냐하면 향간(鄕間)에는 응당 이곳의 강제(講題)가 폐해졌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을 것이니 상경행차가 지체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이 군색한 손으로 어떻게 행장이나 마편 등을 마련하고 준비하여 떠나올 수 있겠는가? 나의 말을 애당초 내려 보냈었다면 그가 타고 올라온 뒤 다시 내가 타고 내려가는 방도로 삼는 것이 그야말로 둘 다 편했겠지만, 뒤 늦게 후회한들 어찌 하겠는가? 마음으로는 종형이 들어 온 이후 그를 대신 소청(疏廳)에 머물게 하고 나는 장차 여러 사람들에게 임무 등을 안배한 후 내려가고자 할 계획이었지만, 중요하지도 않은 일이 나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 되었을 뿐이다.
안치묵(安致默) 상소(上疏)의 비답(批答)에, "진설(陳說)한 내용이 절실하지 않은 것이 없으니 매우 좋고 숭상할 만하다."는 등의 내용으로 운운하였다. 이 형의 문사(文辭)는 넉넉함이 있고, 세도의 분쟁을 보고 본심에서 나온 것으로 그야말로 말할 만한 일에 합당하여 그렇게 말을 한 것이기 때문에 숭상할 만한 것이지 비웃을 만한 것은 아니지만, 반촌에서 스스로 입신하지 못하는 사람들 가운데 바야흐로 그들의 자제들을 위해 한 자리 구멍을 뚫어주려는 무리들은 도리어 시기와 증오하는 마음을 내어 배거복(裵居卜), 이정전(李井田)과 같은 사람으로 귀결시켜 ‘안공도(安公道)’라고 하며 조롱거리로 삼으니 세상 인정의 시기와 험악함이 두려울만하다.
7월 과유(科儒)들이 올라 온 이후로 조금도 응접하지 않은 때가 없었기에 개인 생활의 어려움으로 고통을 이기지 못했는데, 오늘은 마침 찾는 사람이 없어 우리 종형제가 마음 놓고 한가롭게 앉아 있으니 매우 즐거웠다. 이의익(李宜翼)이 이조 판서(吏曹判書)에 통망(通望)되었는데, 공론에는 올해 연말에 낙점이 실행되고 내년 초에 재상으로 점지될 것이라 한다. 재상이 될 재목 또한 어렵지 않으니 우습고 혀를 찰만하다. 소청(疏廳)의 돈이 떨어져 바야흐로 반료(頒料)하는 것이 매우 어려웠는데, 안기(安奇) 상인에게서 환전한 돈 200관(貫)이 들어오니 다행스러울 뿐이다.
고 사장(高査丈)을 뵈었다. 그는 지난 달 29일에 토잔(兎棧)에서 세유(世有)를 만났는데 별다른 탈이 없었고, 그곳에서 고향까지 2일의 여정에 불과하니 그가 무사히 도착했음을 알만하여 다행함이 비할 데가 없었다. 부탁한 옷가지도 부쳐 보냈다 하니 잘 도착 할 것이다. 마침 조용한 때를 얻었기에, 나중에 집으로 돌아갈 때 보촌(保村)의 대소빈소에 곡하고자 생각하면 결문(訣文)을 지어두지 않을 수 없어 몇 행을 지어 두었다.
강국보(姜國輔)가 와서 말하길, "아우의 회시(會試)를 위해 청탁을 하여 거의 될 만한 방도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벼락이 친 사건 이후 이미 6, 7푼 공도(公道)를 행할 의론이 있게 되었고, 안 정언(安正言)의 상소(上疏)가 나와 결국 공정히 선발하는 것으로 결정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어느 어느 아무개 곳들에서 청탁을 허락을 받은 자들은 모두 진시(陳試)를 권하며 내년 봄까지 기다리라고 했습니다."라고 했다. 또 말하길, "안 정언의 상소는 스스로 주관했던 것이 아니라 어느 한 곳에서 분부가 있었던 것이랍니다."라고 했다. 나는 그것을 듣고는 그가 안치묵의 상소에 불쾌해 하는 것이 매우 가증스러워 장난스러운 말을 빙자하여, "형의 집안은 몇 세 동안 과거에 합격했는데도 이처럼 공정함을 싫어합니까? 세도가 공정함을 행하고자 했다면 어찌 불가할까를 꺼려하여 결국 안 형의 손을 빌렸겠습니까? 내가 보기에 안 형 또한 한 번 공을 세워 이 세상에 있는 자인데, 그의 말로 잠시나마 고질적 병폐를 되돌리게 된 것이니 어찌 귀할 만 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대 막내아우의 과거시험을 유예하고자 한 것은 무슨 연고로 그런 것입니까?"라고 말했다. 그는 장난스러운 말로 받아드렸지만 또한 요량이 없음을 아는 것 같을 뿐이다. 동당 회시(東堂會試)는 또한 이와 같다면 다행스럽지만, 이는 곧 비록 벼락이 1년 동안 치고 안치묵의 상소가 있다 하더라도 변동될 수 없음이 있다고 하니, 이번 감회시(監會試)에 공정함을 행하는 것도 저들을 견고하게 할 징조인 셈이다.
저녁때 여관 주인이 제민원(濟民院)으로부터 중국칙사 행차를 보고 왔다. 중국 사신은 상사(上使)와 부사(副使) 각 1인, 총관(摠管) 2인, 개장탑(開張嗒) 9인, 청직(廳直)과 같은 등속 5인으로 도합 18명 이었다. 옷은 검정 두루마기를 입었고, 변발을 뒤로 내리고 정수리에는 마을(麻乙)을 썼으며, 상하의가 구분이 없는 것 등 형상이 마치 개돼지와 같았지만, 총위(統衛) 하는 우리나라의 군마는 위의를 볼만 했다고 하니 탄식하고 분했다. 여러 행차는 모두 돌아오지 않고 문외(門外)에서 묵었으니, 내일 연조문(延詔門)에서 대전(大殿)이 나와 사신을 맞이하는 의례를 보고 들어올 계획 때문이라고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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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初八日。
晴。食前泮村諸知舊老少齊來。將出去要速。從叔父辭以困悴。吾與仲賢則辭以有所觀從後觀勢爲之以送去。慮或去者之爲聊耳。從兄主計以卄日前入來。鄕間應不聞廢講之報。則行程似不爲遲。然以若窘手。何以辨備發來■也。吾鬣若於當初下送。則騎來爲吾下去之道。正是兩便。而追悔何及耶。心欲於從兄主入來後。代留疏廳。余則將排衆下去計。不緊之科。於余甚緊耳。安疏批答。所陳無非切實。深庸嘉尙云云。此兄文辭有餘。而見世道紛爭。出自中情。正合可言之事而言之。可尙而不可嘲。而泮村之不能自立之人。方爲其子弟鑽穴之類。還生猜憎。同歸之裵居卜李井田。稱以安公道爲嘲囮。世情之猜險。可畏也。自七月科儒上來後。無一刻不應接之時。起居之勞。不勝其苦。而今日適得無人。從兄弟放意閒坐。甚可樂耳。李宜翼通望吏判。公論歲前實点。歲後卜相云。宰相之才。亦不難矣。笑呵笑呵。疏廳錢乏。方頒料極艱。自安奇商人處。換來二百貫入到。可幸耳。見高査丈。前月卄九日遇世有於兎棧。而別無他頉。此去家鄕不過二日程。其無事入達可知。爲幸無比。所托衣封。亦云付送。可信抵耳。適得間靜。思欲於歸路。哭保村大小殯。而不可無訣文。搆數行以置。姜國輔來言。爲其弟會科。某條求囑。庶得有可望之道。震雷後已有六七分行公之議。而安正言之疏出。而斷■(爲)以公選爲決。某某處受許者。皆勸陳試以待來春云。且言安疏非自主。亦有一處分付。余聞之。甚可憎其不快於安疏。憑戱謂兄家幾世筩科以來。而若是其惡公也。世道欲行公。則何憚不可。乃假手於安君耶。吾見安兄。亦一樹立居此世。以其言暫回痼弊。豈非可貴耶。欲陳季氏科。則以何故也。渠以戱言受聽。而亦似知無料耳。東會亦如是則可幸。而此則雖雷震一年。安有上疏。有不可變動云。而監會行公。又是固彼之兆耳。夕時主人自濟院觀勅行而來。胡使上副各一人。摠官二人。開張嗒九人。廳直之類五人。合十八名。而衣則黑周衣。徧髮垂後。頂着麻乙。上下無分等。形若犬豕。而統衛我國軍馬。威儀可觀云。嘆憤嘆憤。諸行皆不還來。宿門外。爲觀明日延詔門大殿出迎之禮。而入來計云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