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문중 자료 > 일기 > 임천청액일기(臨川請額日記) > 01권 > 1864년 > 9월 >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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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AC+K09+KSM-WM.1864.4717-20170630.01031020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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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864년 9월 7일 / 高宗 1 / 甲子
날 씨 맑다.
내 용
식전에 중현(仲賢)이 오 교리(吳校理)를 보기 위해 방외(坊外)로 나갔다. 말의 병이 조금 나았지만 끝내 먹을 생각을 내지 않으니, 아마 필시 여증(餘症)이 있는 것 같았다. 오늘 아침 비로소 죽을 먹기 시작했으나 전부 먹지는 못했다. 반촌의 여관에는 죽은 말이 많다고 하니 소문을 듣고는 매우 염려가 되었다. 반촌에 들어온 뒤로 몇 달 탕국을 먹지 못했는데, 요즘 새 무우가 낭자하여 주인에게 간청하여 한 사발을 얻어먹으니 별미로 느껴졌다. 대개 땔감이 귀하여 자주 국을 끓여 줄 수 없기에 주인이 애써 하고자 하지 않았으니 그 정이 괴이할 것이 없을 뿐이다.
어제 정사(政事)에서 이능섭(李能燮)이 대사성의 말망(末望)에 들었다가 낙점되었는데, 영남사람이 기사환국이후 처음으로 있는 일이다. 도동(桃洞)의 부제학과 더불어 기특하고 장함에 다름이 없다. 안치묵(安致默)이 상소하여 회시(會試)에서 공정한 도리를 행하라고 청했으나 비답이 아직 내려오지 않았다고 한다. 오후에 영남의 방을 얻어 보았는데, 종형이 참방에 합격했으니 기쁨을 어찌 헤아리겠는가. 사은할 즈음에 과거에 붙기 위해 뒷공작을 하는 중에 절대로 행공의 희망이 없는데, 늙은이의 걸음으로 헛되게 심력을 허비하니 도리어 불행하게 될 것이다. 다만 천리 밖에서의 상면이 예상되어 기쁠 만하다. 처음에 경상 감사가 동당시에는 문중을 안배하여 선발하지만 대원군이 지목하여 넣은 자가 합격하고 다른 사촌들은 방에 들지 않을 것으로 여겼다. 방을 들은 후에 이것은 뜻밖이었으나 헛되어 근력을 허비한다고 말했는데, 병이 없는 자가 그것에 해당되니 조금은 마음에 맞을 만하다.
중현(仲賢)이 들어와 오 형(吳兄)은 그 사이 2~3 차례 심처(深處)에 갔으나 겨를이 없어 말하지 못했다고 한다. 대개 그 집은 요즘 응접이 더욱 심하고 고관대작들이 집에서 가득 나왔다. 비록 긴요한 객이라도 삽시에 사사로운 말을 할 틈이 없었다. 어느 때 틈이 있어 가능할지 알지 못할 뿐이다. 한탄스럽다. 한계원(韓啓源)은 예조참의로 대사헌으로 옮겼다. 그의 종(從) 한경원(韓敬源)도 예조참의에 제수되었다. 남촌(南村)의 사람들은 갈수록 교만하고 방자해지니 매우 미울 뿐이다. 한림 홍원식(洪遠植)이 문안 왔는데 나이는 겨우 22살이고, 용모가 매우 뛰어나 대원군의 총애 받는 1명이라고 한다.
내일 청나라 사신이 들어오는 일 때문에 홍제원에 보러 가려고 여러 노소가 와서 일찍 나서자고 했다. 종숙부는 의사가 없지 않아 여러 사람이 파하여 간 후에 뒷쫒아 구경하자고 하니 나이 든 사람의 행동거지는 아니다. 지난번의 거동은 신하된 자가 천안(天顔)을 보기 위한 것에서 나왔으니 정과 뜻이 당연하여 불가함이 없을 듯하다. 그러나 저 청나라 사신은 뜻있는 선비가 차마 볼 바가 아니다. 하물며 오늘날의 마음과 소원은 자기 이목의 즐거움을 이루지 못하면, 한 가지도 내버려 두거나 빠트림이 없으니, 또한 도리가 아니다. 내가 그것을 멈추길 원했더니, 그만두는 것이 맞겠다고 허락했다.
말이 비로소 저녁 죽을 매우 달게 먹으니 염려됨이 없다고 할만하다. 그러나 피골이 상접하고 이전으로 회복할 방법이 없으니 또 한 가지 근심되는 일이다. 그러나 반촌의 말은 죽은 것이 거의 5~6필인데, 이와 견주어 보면 오히려 큰 다행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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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初七日。
晴。食前。仲賢爲見吳校理出去坊外。鬣子病小可。而終不生食念。似必有餘症。今朝始喂粥。全不食。而泮館多有死馬。入聞甚爲關慮耳。入泮後幾月不得食湯羹。近日新葍狼藉。懇請主人。始得一盂。覺是別味。蓋薪貴不可數供者。故主人苦不欲。無怪其情耳。昨日政李能燮入大司成末望落点。嶺南人己巳後始有之事。與桃洞副提學。奇壯無異。聞安致默上疏。請行公道於會試。而批旨姑未下云耳。午後得見嶺榜。從兄主中參。欣喜可量。更恩之際。此奔競之中。萬無行公之望。則老脚殘錢。虛費心力。還爲不幸。但千里外相面。豫爲欣幸。初聞嶺伯於東堂。則門中排選。而元君入指目。故或慮其偶參。而他從則不入幸望矣。聞榜後又是料外。而以虛勞筋力言之。則無病者當之。亦差可意也。仲賢入來。而吳兄其間再三次往深處。而無隙可言云。蓋其家近日應接尤甚。軒貂金玉堂室量出。雖緊客無霎時私言之隙。未知何時可有間迄耳。嘆嘆。韓啓源以禮參移大司憲。其從敬源又拜禮議。南村者類。去益驕恣。甚可憎耳。洪翰林遠植來問。年僅卄二。而容貌極妙。大院丈之一寵云耳。以明日胡勅入來。邀觀於洪濟院次。諸老少來要早出。從叔父不無意思。諸人罷去後。向以逐伴遊玩。非長者行止。頃日擧動。則生爲臣子習見天顔。情義當然。似無不可。而彼胡使非志士之所忍目。況今日情願未遂自己耳目之娛。則無一遺漏。又非道理。願止之卽。許可止之。鬣子始喂夕粥甚甘。可無慮。而皮骨相連。無可復前之術。又一悶事。然泮村馬死幾至五六匹。視此猶大幸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