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문중 자료 > 일기 > 임천청액일기(臨川請額日記) > 01권 > 1864년 > 9월 >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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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AC+K09+KSM-WM.1864.4717-20170630.01031020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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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864년 9월 6일 / 高宗 1 / 甲子
날 씨 맑다.
내 용
식전에 니현(泥峴)의 오 교리(吳校理) 집으로 문집과 병명(屛銘)을 싸서 보냈는데, 어제 그 사람이 가지고 심처(深處)에 드리기로 한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일의 기미는 가죽신 밖에서 긁는 것이니, 우선 한마디의 말을 투급하여 심처의 판가름을 얻지 못했으니, 어떤 말을 낼지 알지 못하겠다. 요컨대 시상(時象)은 되돌릴 도리가 없는 즉 끝내는 헛되게 돌아갈 것이 진실로 마땅히 예상될 뿐이다. 청나라 사신이 의주(義州)에 이르러 시를 지어 판으로 걸었는데 상구(上句)는 전하지 않고 말구(末句)는 전해져 내려온다고 했는데, 여기에 "좋은 구절의 생의는 부착에 달려 있다"라고 했다. 내가 부질없이 스스로 뜻을 찾아보았는데 혹 의미가 풀리는 것도 있었다. 괴이한데 이른 것은 후일 와서 머무를 뜻이 있다고 이른 것이다. 황경(皇京)의 오늘은 보호할 수 있는 것이 몇 리도 없다고 이를 뿐이다.
지난번에 대간(臺官)에서 연명 차자를 올렸다고 하는데 단지 등록(謄錄)에 의거했다. 혹자는 힘써 올렸다고 했지만 특별히 새로울 것은 없었다. 하늘이 경계를 내려준 것은 은혜를 보답하는 일이다. 다만 글은 모두 문구의 전례만 따르니, 이처럼 정성이 없다면 하늘을 속이는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가. 매우 탄식스럽다.
사월 어른(沙月丈)이 떠난다고 하여 집으로 보내는 편지를 써서 보러 갔는데 행장을 꾸리느라 분주함이 심했다. 사실(士實)경휴(敬休)도 말고삐를 나란히 하여 고향으로 돌아 갈 것이라고 했다. 도서(圖署)의 풍랑에 마침내 남은 경계가 없는데, 이런 행차를 하니 서로 축하하며 보낼 뿐이다. 그 출발은 오전에 지연될 거 같아 아래로 내려가게 되었다.
지나가는 길에 정문서(鄭文瑞)정우서(鄭禹瑞) 척씨(戚氏) 집에 들어갔다. 그 당내에는 초시 합격자가 있었는데, 유태관(柳台館)에서 예전(禮錢)에 응했는데, 하동(霞洞)에서 발기(發記)하여 또 징수하러 왔기에 이미 응했다는 것으로 주지 않았다. 나를 보면서 발명(發明)하고자 하는 생각이 있는 것 같았는데, 인색(印色)의 뜻은 아니었다. 내가 상관하지 말라고 했지만, 어찌 순풍의 끝을 기다리는 소치가 아님이 없겠는가. 우스울만하다.
사촌(沙村)해저(海底)의 행차가 출발했고, 여러 사람이 전현(磚峴)에 돈을 보내어 전송했으니 이별하는 회포가 좋지 않았을 뿐이다. 중현(仲賢)은 자암 영감(紫岩台)을 보려고 했으나 청나라 사신을 맞이하기 위해 습의(習儀)하는 진열에 막혀 중도에서 돌아오니, 나쁜 일은 아니었다. 재중(齋中)의 진사(進士) 조석룡(趙錫龍)이 보러 와서 병명(屛銘)을 구하기에 허락하여 1부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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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初六日。
晴。食前。封送文集及屛銘於泥峴吳校理家。以昨日有自家持納於深處之約故耳。此等事機無非靴外之爬。姑未得一言透及卞深處。則未知如何出題。然要之時象無可回之道。則末梢虛歸。固當豫料耳。若有得至呈疏之境。則豈非天幸耶。聞胡勅來到義州。作詩揭板。而上句不傳。有末句傳來云。好句生意在斧鑿。謾自尋或有解意。致怪謂有後日來留之意。蓋皇京今日。則所保無幾里云耳。聞■(尙)向日臺官聯箚。只依謄。或勉進云。而別無新奇之事。天警之下。所以報塞之事。只從文具前例。若是無誠。其可謂不欺天乎。可嘆可嘆。聞沙月丈發去。修家書往見。方束裝撓甚。士實敬休亦將幷轡還鄕。圖署風浪。竟無餘戒。此行則可相賀以送耳。其發似遲午前。故爲下來。而歷路入訪鄭戚文瑞及禹瑞氏。其堂內有初擧者。而禮錢應於柳台館。霞洞發記又來徵。而以已應不給。見我若有欲發明。非印色之意。余以不干言之。然安知非候風末之致耶。可笑。沙海行發來。諸員送錢于磚峴。別懷不佳耳。仲賢爲見紫岩台。而路塞於迎胡習儀陣。中道還來也。非惡事也。齋中進士趙錫龍來見。求屛銘。許贈一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