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문중 자료 > 일기 > 임천청액일기(臨川請額日記) > 01권 > 1864년 > 9월 >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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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AC+K09+KSM-WM.1864.4717-20170630.01031020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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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864년 9월 5일 / 高宗 1 / 甲子
날 씨 맑다.
내 용
말이 한밤중부터 복통을 앓기 시작했다. 처음에 겨우 단잠에 들었다가 일어나 말을 검사하고 약을 먹이며 여러 방법으로 치료했으니 모두 전날 이미 징험했던 처방이었다. 하지만 조금도 변동이 없어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고 아침이 되어서 검사해 보았더니 복부가 북처럼 팽창한 것이 더욱 심하였다. 분뇨를 모두 찾았는데, 본 사람들이 모두 필시 죽을 것이라고 하였다. 부득이하게 마의(馬醫)를 불러 와 약 처방을 내어 급히 지어 와 먹였고 또 쑥 끓인 것과 주초(酒草) 볶은 것을 무수히 먹였는데도 오히려 효과를 보지 못했다가 낮 즈음에 비로소 조금 멎었다. 오늘은 죽을 염려는 없을 만 했지만 공연히 근심과 소란만 떨었으니 매우 분하고 탄식할 뿐이다.
듣기에 감회시(監會試)에서 ‘70세 이상을 직부(直付)하라’는 방목(榜目)에 관한 일로 이미 전교(傳敎)가 나왔다고 하니 비록 노인을 우대하는 은전이긴 하나, 이후 과장(科場)과 봉내(封內, 봉해진 시권 안쪽 인적사항 기입부분)에는 70세 이하의 사람은 없을 것이니 또한 공정한 선발의 도리가 아니라 후배들의 앞길을 막는 폐단일 뿐이다. 권우필(權遇弼) 어른이 말을 구하지 못했고 또 병이 조금 나아져 우선 돌아갈 생각을 그만두었지만, 다만 ‘소유(疏儒)들이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명목만 퍼트리게 되었으니 매우 고민될 일이다. 사월(沙月) 어른 또한 편안히 돌아가지 못할 듯하니 이러한 모양새와 같을 뿐이다.
중국 칙사(勅使)가 장차 9월에 도착하는 것 때문에 감회시를 15일로 물려 잡았다. 듣기에 별로 볼 만한 것이 없는 자이지만 그래도 대국의 인물이기에 문외(門外)로 보러 나가고자 하지만, 사람을 금지하는 것이 지난번 임금님의 거둥 때와 매우 다르다고 하니 또한 수고롭게 움직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당일에 장차 어찌 할지는 알지 못할 뿐이다.
어느 심처(深處)에 요긴한 길을 가진 자가 최병규(崔炳圭)에게 와서 그를 꾀어 3천 냥으로 초사(初仕)를 약속하였는데, 그는 대략 돈의 액수를 갖춰 두고 하루를 기다렸다. 평상복을 입은 어떤 사람이 최병규의 여관에 와서 그가 한 일을 들어 알고는 곧바로 "대원군(大院君)께서 불러 오라고 분부하였다."고 하였다. 최병규는 "나는 대원군이 어떻게 하려고 나를 부르시는지 알지 못하겠습니다."라고 답하고는 두려워 가고자 하지 않자 그 사람은 눈을 부릅뜨며, "누구의 명령인데 가만히 앉아서 듣기만 하고 어기려는가?"라고 하였다. 최병규는 결국 그를 따라 가니 곧 대원군이 그의 성명을 묻고는 이어서 "돈을 내고 관직을 구한다던데 맞느냐?" 라고 말했다. 최병규는 "감히 하지 못하는 일입니다. 결단코 잘못된 말입니다."라고 대답하자 대원군은 "내 이미 돈의 액수와 흥정한 사람을 알고 있으니 감히 속이지 말라."라고 했다. 최병규는 결국 사실을 고하며 "‘아무개’라고 하는 사람에게 꾐을 당한 것 때문이니 죄를 졌습니다."라고 운운하였다. 대원군은 별다른 말없이 그를 보내며, "내가 영남 감영에 관문(關文)을 보내 사실을 조사한 이후를 기다렸다가 고향으로 내려가라. 지금은 감히 여관을 떠나지 말라."라고 운운하였고, 최병규는 겁을 먹고 갔다. 그렇게 온 지 이미 열흘이 되었는데도 이렇다 할 만한 말이 없어 결국 일전에 내려갔다. 혹자는 대원군이 수년 뒤의 계획을 위해 이에 앞서 최병규의 안면을 알아두고 보낸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야기가 좀 심한 듯 할 뿐이다.
월전에 충청도에 거주하는 박씨(朴氏)라는 사람이 찾아왔다가 갔다. 일찍이 경성에 와서 머물던 자이며 하양(河陽) 숙부와 친하게 왕래하던 자이었기에 우리 종숙질 또한 그를 대접하며 끊어내지는 않았던 자인데, 오늘 문득 인편을 통해 소지(小紙)를 보내어 ‘영남 유생 가운데 혹 회시(會試)에 길을 구하고자 하는 자가 있다면 여기에 긴혈처가 있으니 그러한 사람을 보내주는 것이 매우 좋을 것’이라며 운운하였고, 서방삼번(書房三番)의 노인에게 들이겠다고 하니 편지를 보고 크게 웃었다. 대개 한양에 거주하는 자들은 이와 같은 무리가 아님이 없어 공연히 먹을 생각만 내어 이처럼 남을 속이는 수법으로 삼는데, 이 사람은 더욱 잘못된 식견을 가진 맹인 같은 사람이다. 나를 도리가 아닌 것으로 속일 수 있는 사람으로 여긴 것이기에 매우 우습고 탄식할만하여 답장하기에도 부족했다. 하지만 숙부께서는 또 몇 글자 불러서 대신 쓰게 하여 답장하였으니 조카 무리들의 좁은 속이 미칠 만한 것은 아닐 뿐이다.
손에 푼돈도 쓸 수 있는 도리가 없고 밤부터 아침 상간까지 말에게 들어간 비용이 한 냥이 족히 넘어 모두 여관 주인에게 빚을 지니 또한 한 가지 근심이다. 헌납(獻納) 김영묵(金英默)이 찾아 왔으니 곧 전날 소(疏)를 올려 도화서(圖畫署)의 유소(儒疏)에 관해 논한 자였다. 비록 그는 뜻을 주장할 만한 자는 아니지만 얼굴을 보는 것 또한 매우 기쁘고 감사했고, 그의 모습이 사랑스러울 만 하였다. 나이는 병술(丙戌) 생이니 또한 일찍 현달한 자 일 뿐이다.
승지(承旨) 심동신(沈東臣)이 문안 왔으니 그는 야동(冶洞)에 거주하는 자였는데, 수작에 사뭇 너그럽고 두터웠다. 상소에 관한 일을 언급하자 고민되는 마음을 전하며, "사문(斯文)의 일이 어찌 널리 공의에 부쳐지는 날이 없겠는가?"라고 했다. 다만 한양의 친구들뿐만 아니라 처음 본 자들도 문안하러 오고, 말에도 또한 정념이 있으니 숭상할 만 할 뿐이다. 종숙부가 마침 또 반촌에 들어왔지만 서로 만나지 못하니 고민되고 한스러웠다. 저녁에 오 교리(吳校理)가 찾아왔다. 듣기에 그의 말이 사뭇 …… 하고자 했고, 반촌에 들어왔다가 돌아가는 길이었는데, 해가 이미 저물어 오래 이야기를 나눌 수 없었으니 한스러울만했다. 뒤에 문오(文五) 영감에게 소호(蘇湖) 어른이 상대하여 …… 라고 말을 하여 답하기를, "성의를 내어 주선 하겠지만 그 수작을 널리 전하지 말라. 또한 시류배들이 행세하고 있으니 혹 일변에서 의심을 받을까 두렵다."고 했다. 듣기에 회시는 사뭇 공도(公道)로 행해질 의론이 있으니 간절하고 지극한 노유(老儒)들을 위해 미리 다행이고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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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初五日。
晴。鬣子自夜半始腹痛。初寢才甘。起檢喂藥。多方治療。皆是前日已驗之方。而無一分變動。達曙不得寐。朝來檢視。尤甚腹漲如鼓。糞溲俱索。見者皆云必死。不得已招來馬醫。出藥方。急製來喂之。又湯艾及酒草煮。無數喂之。猶不見效。午間始少止。今則可無死慮。然空費愁擾。極爲憤嘆耳。聞監會試七十已上直付榜目事。傳敎已出云。雖是優典。而此後科場封內。無七十以下人。亦非所以公選之道。杜後之弊耳。權遇弼丈見敗於馬。又病少可。姑停歸計。而只布疏儒還去之名。甚是悶事。沙月丈亦似不安歸。而同此套耳。勅使將以九月京下馬。所以監會之退。在望日也。聞別無可觀者。而猶是大國人物。擬欲出見於門外。然禁人。與擧動時大異云。亦料不必勞動。未知當■(時)日將如何耳。有緊路於深處者。來誘崔炳圭。約以三千兩買初仕。崔蓋備置錢數。以待一日。有人常服來崔館。聞知爲崔炳圭卽云。大院君分付招來。崔答以吾不知大院君何爲而招生。恐不欲往。其人瞋目曰。誰令而聽坐違乎。崔遂隨往。則大院君問姓名。因曰。納錢求官信乎。崔謝不敢之事。斷斷虛語。大院君曰。吾已知錢數及居間人。勿敢欺也。崔乃實告。爲某人所引誘。有罪云云。大院君無他言。送之曰。待我出關嶺營査實後下去。無敢離館云云。崔含劫去。來已有旬而無皁白。遂以日前下去。或言爲數年後。計先此知面而送之云。然似甚談耳。月前有忠淸道居人朴氏云者。來訪而去。曾是來留京城者。而親往來於河陽叔主者。故從叔侄亦待以不絶。今日忽因便付小低云。嶺儒或有會試求路者。此有緊穴。送之甚好云云。謂納於老書房三云。披覽大笑。大抵居京者無非此類。空生食念。爲此欺人之術。而此人尤是誤見之盲。謂我爲可欺以非道者。甚可笑嘆。不足答。而叔主又呼數字倩書以答。非侄輩小腹之所可及耳。手無分錢可用之道。而鬣子夜朝間所費。洽過一兩。皆是負債於主人。亦一愁惱也。金獻納英默來訪。卽前日上疏。論圖署儒疏者也。雖非渠主意而。看面亦甚欣感。且其貌相可愛。年紀則丙戌生。亦早達耳。沈承旨東臣來問。居冶洞者也。酬酢頗款厚。言疏事致悶意云。斯文事豈無恢公之日耶。非徒京中知舊。初見來問。言語亦有情念。可尙耳。從叔父適又入泮。未得相面。悶恨。夕時吳校理來訪。聞其言頗欲▣…▣【缺】。入泮歸路。日已曛。未能長語。可恨。後聞於文五令座。湖丈相對▣…▣言。答云。發誠周章。而勿使廣傳其酬酢。而亦時人行世。或恐見疑於一邊耶。聞會科頗有公道之議。爲切摯老儒。預爲之幸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