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문중 자료 > 일기 > 임천청액일기(臨川請額日記) > 01권 > 1864년 > 9월 > 4일

임천청액일기(臨川請額日記) 리스트로 첫 페이지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마지막 페이지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9+KSM-WM.1864.4717-20170630.010310200005
URL
복사
복사하기

상세내용

상세내용 리스트
날 짜 1864년 9월 4일 / 高宗 1 / 甲子
날 씨 맑다.
내 용
밥을 먹기 전에 임하(臨河) 권유락(權有樂)이 보러 왔으니 매우 기뻤다. 이어서 집의 편지를 받았는데 편안하다고 하니 기쁨을 말할 수 없었으나 서울이나 지방도 말할 것 없이 모두 조용한 땅이 없으니 매우 고민되는 일이다. 그러나 다만 임지에 소란이 일어나도 그 소란에 동요하지 않는 것이 곧 처세하는 방법이다. 하물며 같이 지낸 사이에 또한 다툼이 없을 것이다. 저들이 점차 어긋난 것을 알지 못하니 보내 준 편지 중에 이미 이러한 뜻으로 내려주신 것 같으니 다행스럽고 다행스럽다. 다만 호계서원 천임(薦任)할 때 혹 상의할 일이 있을 것 같으나 깊이 근심하시는 것에는 미치지 못하니 안타깝고 안타깝다.
밥을 먹은 후에 자형(姊兄)을 보러 갔는데 파리한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대개 걸어서 길을 떠났는데 우연히 돌아가는 인편을 만나 돈 1전도 쓰지 않고 오백리 중에 한 걸음도 걷지 않았다고 하니 또한 기묘한 일이니 다행스럽다. 문약 장(文若丈)이 집안의 편지를 본 후에 개인적으로 나를 만나 반드시 먼저 돌아가겠다고 하니 가을에 볼 일이 비록 많을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이번 일의 정황은 사사로이 이루고 이루지 못함을 헤아리지 못하겠고 함께 물러나고 나아가자는 뜻으로 여러 가지 말을 하니 입 밖으로 내지 못하고 끝내 그렇게 하지 못하니 근심스럽고 근심스럽다. 본래 일이 지금 이후부터 또한 쉴 틈 없이 심처(深處)[대원군의 의중]를 살펴야 하나 다만 앉아서 시험 치는 유생들의 분주한 상황을 보고 세상의 도리를 들으려고 하지 않으니 우리에게 전해진 일은 이룰 수 있는 바람이 없으니 이것은 어떠한 모습인가.
통유(通諭)의 일은 종숙부(從叔父)가 끝내 돌이킬 뜻이 없으니 결국 돌아갈 때이다. 오늘 통유한 일에 대해 사나운 말이 있을 듯하다. 곧 내일이라도 흩어져 돌아가려는 모습을 미리 볼 것 같으니 근심스럽고 탄식한다.
법흥(法興)의 모인 유생들이 보러 왔고 달민(達民) 또한 도착하였으니 위로되고 기쁨을 견줄 곳이 없다. 이곳에 온 지 넉 달이 지났는데 친구의 얼굴을 보는 것이 고향보다 10배나 많으니 백성들이 머물려야 하는 곳이라는 것을 믿겠구나.
달성 감영에 온 자들 중에 혹자가 말하기를 "동당(東堂)은 원종(元從) 가망이 있으며 문중에 분배하겠다는 말은 억측이고 터무니없는 소문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근래 듣기에 동당시에서 도를 나눴다는데 다만 헛된 일이 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혹 우연히 참가한 병든 객(客)이 먼 길을 가는데 헛되이 힘을 쓴다면 도리어 불행할 뿐이다. 감회(監會)는 우선 대과(大科)에 수가 정해져 분배할 여지가 없을 것 같으니 순수하고 공정한 바람이 없을 듯하다. 만약 한결같이 공정하게 선출되지 않을 것이 또한 근심스러울 뿐이다.
진사 이제병(李濟秉)은 곧 제(齊)에 지내는 자로 아침 먹기 전에 보러 와서 말하기를 "상소에 대한 일을 태학(太學)에 한 번 통문하는 것이 합당하고 이로써 심처(深處)가 어떠한 마음인지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또 조정에 큰 일이 열흘간 잇따라 있어서 형세 상 어쩔 수 없이 동회(東會) 후를 기다려야 합니다."라고 하였다. 이는 곧 나를 위해 함께 근심하는 것이다. 그리고 "어제 듣기에 강 영감이 언론에게 크게 책망을 당하였습니다. 남인 중 먼저 나아가 말할 만한 자를 바랬지만 강 영감 또한 대답 없이 사직하였습니다." 라고 하였다. 대개 이미 헤아리고 있던 자들의 의견들이 모두 이와 같았다. 앉아서 세월을 보내니 매우 답답할 뿐이다.
중현(仲賢)이 오 교리(吳校理)를 보러 나갔는데 이미 세 번째이다. 오늘 자못 정성스러웠으며 그 아버지 앞에서 공경스럽게 서로 말을 하였는데 그 아버지가 "너희들은 어찌 허교(許交)하지 않는가."라고 질책하니 오 교리가 곧 아버지의 말에 따라 허교하였다고 한다.
이어서 오 교리가 말하기를 "마땅히 틈을 타서 대원군(大院君)에게 갖추어 고하겠습니다." 라고 하니 우리 도의 상소하는 일이 어찌 헛되이 돌아가겠는가. 중현이 말하기를 "신미(辛未)년 종친을 기용할 것을 요청하는 소는 문집 중에 있는데 대원군이 만약 살펴본다면 관심이 있을 것 같으나 들여보낼 방법이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오 교리가 대답하기를 "그러할 것 같습니다. 문집과 병명(屛銘) 1개를 당신들이 보내서 모쪼록 몇 가지 이야기를 한다면 보고서 외면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남촌(南村) 몇 곳에서 비로소 듣고 말하기를 "대개 이 공은 밤에 출입하는 손님들이 줄지어 서있다."라고 하였으니 혹 힘이 되지 않겠는가. 그가 또 말하기를 "지난번 호남 시관 때에 잠시 상소에 대하 일을 고했는데 이미 우선 기다리라는 말씀이 있었으니 그 사이에 의향이 어떠한지는 모르겠다."라고 하였으니 비로소 전날에 말한 것이 헛되지 않았음을 알 뿐이다. 그러나 또한 반드시 지금 객이 어찌 갑자기 요구할 수 있겠는가.
밤 이경(二更) 쯤에 듣기에 "대왕대비전에서 매일 천둥이 치는 것으로 떨리고 놀라는 마음을 비할 데가 없어서 양사(兩司) 대간(臺諫)에게 곧바로 입직하라고 명령하였는데 독촉함이 매우 엄했습니다. 안치묵(安致默)이 탈것을 기다리지 않고 급히 들어갔다고 합니다. 이어서 직언을 구하는 전교가 내려 삼사(三司)에서는 연차(聯箚)하라고 분부하였다고 합니다." 라고 하였다. 모두 말하기를 "감회(監會)는 혹 공평하게 처리할 희망은 있을 것 같으나 10일 내에 만약 임금에게서 경계하는 말이 없다면 또한 오로지 믿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인정으로 안타깝고 또한 탄식스러울 뿐이다.
강국보(姜國輔)가 와서 말하기를 "오늘 대원군의 집에 갔는데 집안 가득히 보물이 있었습니다. 말석에 앉아 겨우 문안을 하였으나 그가 받아들이는 것을 기필할 수가 없었습니다. 앉아서 대원군이 홀로 말하는 것을 들었는데 ‘아. 날마다 벼락이 치는구나.’라고 하니 그 중에 금관자(金貫子)[정2품, 종2품의 벼슬아치] 1명이 어깨를 움츠리고 앞으로 나가 두 손을 무릎에 얹고 말하기를 ‘며칠간 번개가 치는 것은 풍년의 징조이고 가을날 번개 치는 것은 첫서리가 늦게 내리는 조짐입니다.’라고 하니 대원군이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앉아서 그에 대한 미움이 일어나 그 사람을 건너보며 ‘그저께 전라도에서 계를 올렸는데 24일 이미 서리가 내렸다고 합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대원군이 말하기를 ‘옳다. 전라도에 이미 서리가 내린지 열흘 남짓인데 번개 치는 것이 어찌 늦서리의 조짐으로 보겠는가.’라고 하며 3,4번 다시 왜 그런지 묻기를 그치지 않으니 그 사람이 얼굴이 붉어지며 몸 둘 바를 몰랐습니다. 【아첨하는 세상의 모습을 매우 생생하게 그렸다.】 잠깐 사이에 물러날 것을 고했는데 대원군이 보지 않았습니다." 라고 하였다.
내가 말하기를 "공이 저들을 면박한 것은 과연 속임 없이 공의 아첨을 미워하는 마음이 나왔겠습니까. 끝내 한결같은 마음이니 이와 같은 사람은 면박할 필요가 없습니다." 라고 하니 그 또한 크게 웃고 만남을 마쳤다. 김 자형(金姊兄)이 와서 이야기하고 밤이 깊어진 후에 관(館)으로 돌아갔다.

이미지

원문

初四日。
晴。食前。臨河權有樂來見。欣甚。因得家書。承安信。喜不可言。而無論京鄕都無靜地。大是悶事。然直自任地作擾。不爲其干撓所動。乃是處世之方。況同室之間。又不可較。彼無知漸致乖激。下書中似已看下這道理。伏幸伏幸。但虎院薦任之時。似或有商量之事。而未及深爲下涼。伏恨伏恨。食後。往見姊兄。不見勞悴之態。蓋徒■步之行。偶得順便。不費一錢。而五百里不一步。亦是妙事。可幸。文若丈見家書後。私見余。必欲先歸。念其當秋所觀雖多。而目今事体。不可計私以成否。同去就之意。多方言之。使無出口。而終不爲然。悶悶。本事自今以後。則又無隙可探於深處。只坐見科儒奔走之狀。及世道不欲聞之。傳事無可成之望。而此何模樣。通諭事從叔父終不回意。畢竟臨歸之時。今日投通。若有激言。則明日散還之象。可預見耳。悶嘆悶嘆。法興會儒來見。達民亦見到。慰欣無比。蓋來此後閱四朔。知舊見面。十倍於居鄕。信乎民之所止之地也。自達營來者。或言東堂。則元從有可望之端。似以門中分排之說。臆料流言。然近日所聞分道東試。只歸虛設云。或偶參病客之空費遠役。還是不幸耳。監會姑不如大科之定數分定無餘。而似無純公之望。若其無一公出。則又可慮耳。李進士濟秉卽居齊者。朝前來見。言疏事合有一番通文於太學。以觀深處如何意內。而今則又朝家大事連旬。勢不得不俟東會後云云。此則爲我共憂者。而聞於昨日。姜令座大言論責望南中先進之可言者。姜令亦無答辭云。蓋有料量者。意見皆如是。而坐送歲月。極爲悶㭗耳。仲賢出見吳校理。蓋已三數矣。今日則頗致款。而於厥父前。相語尊敬。其父責以■汝輩何不許交也。吳校理卽奉順許交。因言當乘隙備告於大院君。一道疏行。豈可空歸耶。仲賢言辛未宗親敍用疏在集中。大院君若■(不)下覽。則似不無情念。而無路入送。吳校理答云。似然矣。文集及屛銘一部出送於鄙所。則當某條呈納數件酬酢。見非外面云。南村幾處始聞之言。蓋此公在夜出入之客列云。或有力否。其言又云。去湖南試官時。暫告疏事。已有姑俟之敎。未知其間意向如何云。始知前日所言非虛耳。然又必是時客。何可遽爲之要梯耶。夜幾二更聞。大王大妃殿於連日雷聲震驚無比。兩司臺諫卽爲入職事下令。催促甚嚴。安致默不俟駕入去。而繼又下求言傳敎。及三司聯箚分付云。皆云監會或有公道之望。然十日之內。若無自天吏警之聲。則又不可專恃云云。人情可哀。又可嘆耳。姜國輔來言。今日往大院君家。滿堂金玉。渠則隅坐僅問安。而其納聽未可必。坐聞大院君獨語。嘆連日雷震【連日雷震】。其中金貫子一人。竦肩出頭。兩手據膝曰。數日雷聲是豊徵。秋雷退霜之兆也。大院無答言。國輔坐見生憎。越見其人曰。再昨全羅道啓。二十四日已霜降矣。大院君曰。是也。全羅道已霜降旬餘矣。雷震何見其退霜也。數三次還繹不已。其人面赤。不知措躬。【阿諂世道之樣儘活畫】少間告退。大院君不擧視云云。余曰。公之面拍彼言。果無挾雜。而出於公心憎諂耶。畢竟是同一心計。則不必拍打人如是耳。渠亦大笑而罷。金姊兄來話。夜深後歸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