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문중 자료 > 일기 > 가세잡기(家世雜記)6-신유일기(辛酉日記) > 01권 > 1801년 > 8월 >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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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801년 8월 29일 / 純祖 1 / 辛酉
날 씨 맑다.
내 용
우안(愚安)의 종이 말을 끌고 편지를 가지고 왔는데, 호상 형(湖上兄)이 함창(咸昌)에서 돌아올 때 우안의 인마를 빌려왔기 때문이다. 말은 놔두고, 종 해(奚)는 즉시 돌려보냈다. 소호(蘇湖)의 이(李) 영감이 휴가를 신청하여 내려왔으나 우리 집의 말이 죽었다고 하니 매우 가여운 것은 재물 여부에 있는 것이 아니다. 운동 형(雲洞兄)이 납속(納贖)하고 돌아왔다고 하니, 갇힌 뒤 끝에 오히려 많이 다행스럽게 되었다. 식후에 부자와 형제가 길가로 나와 관아의 행차를 기다렸으나 이르지 않았다. 파하여 돌아오는데 단구(丹丘) 수령 김희주(金熙周)가 동당 부시험관으로 앞을 지나갔다. 돌아오는 길에 잠시 하촌(下村)에 온 신천(新川) 이 척장(李戚丈)을 뵈었다. 해저(海底)김명중(金明仲)씨 및 청하댁(淸河宅)의 두 아들이 모두 강건하다고 하니, 노유는 다행스러울 만하다. 김이칙(金彝則)의 휘장(揮塲)에 관한 이야기가 마침내 헛된 것이 되고 말았으니 괴이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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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二十九日。
晴。愚安奴子牽馬持書而到。蓋湖上兄主自咸昌還來。而借愚安人馬而來也。鬣者則留置。而奴奚卽還送。聞蘇湖李令呈由下來。而吾家鬣子見斃云。甚爲惻然。不在貨也。聞雲洞兄主納贖還歸云。積囚之餘。猶爲多幸。食後父子兄弟出街頭以待府行而不至。罷還。丹丘倅金熙周以東堂副試過前去。歸路暫見新川李戚丈之來下村者。聞海底金明仲氏曁淸河宅兩少俱健。老儒可幸。金彝則揮塲之說。竟歸虛。可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