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문중 자료 > 일기 > 가세잡기(家世雜記)1-안변종유록(安邊從遊錄) > 01권 > 1798년 > 3월 >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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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798년 3월 14일 / 正祖 22 / 戊午
날 씨 흐리다.
내 용
새벽에 15리를 가서 통천군(通川郡)에 이르렀다. 이방이 나를 보러 와서 본관 수령의 말이라고 하면서 아침밥을 올리고자 했는데 역참이 아니라는 이유 등으로 사양했다. 화산(花山) 이 상사(李上舍)가 통천 관아에 와서 머무르고 있기에 덕태(德太)로 하여금 가서 문안하게 하니, 춘양(春陽)에 머물고 있다고 했지만 알 수 없다. 15리를 가서 총석정(叢石亭)에 이르렀다. 이날 바다안개가 하늘에 접하고 또 파도가 층층이 쌓인 바위에 세차게 일어났다. 배가 물결을 따라 위아래로 움직여 혹은 천길 올라가고 혹은 천길 곧바로 내려갔다. 수많은 깎아지는 바위는 모두 여섯 모인데, 혹은 육지에 이어지고 혹은 바다와 나란히 하여 줄을 지었으며, 혹은 바다 안에 들쭉날쭉 어지러이 서있었다. 당장 위험이 눈앞에 있는 것을 알지 못하니 인욕이 두려울 만했다. 정자 위에 올라가 조금 쉬었는데, 환선정(喚仙亭)은 누울 만했다. 총석이 산과 바다에 이어진 것이 몇 만 줄기인지 모르겠다. 총석진(叢石津)에서 점심을 먹었다. 10문동을 주고 배 안에 살아있는 큰 붉은 게 두 마리로 바꾸었는데, 상하의 종과 주인이 다 먹지 목하여 게 다리를 매달고 왔다. 통천수령이 형리를 시켜 말을 전하였고, 관아의 객 또한 말을 전하였다. 수령의 성명은 김복광(金福光)이고 정동(貞洞)에 살고 있는데, 아버지와는 같은 고을에서 얼굴을 아는 사이이기 때문이다. 답어(答語)를 보내고, 화산 이상사가 총석에 뒤따라온다고 말했지만 오지 않았다. 통천관아 아전의 말을 들으니 안변(安邊)으로 오고자 한다고 한다.
고성(高城)을 지나 진(津)에 이르니, 이는 통천과 흡곡(歙谷) 사이의 큰 나루로 사람이 번화한 것이 마치 도성의 저자와 같았다. 한 고개를 넘으니 바로 흡곡 땅이었다. 고개를 내려가 10리를 가니 흡곡이 있는데 읍안이 조용하여 마치 시골 마을 같았다. 통천고성읍으로 비교하자면 또 그보다 못하다. 수령 남재(南載)가 부모상으로 체직되어 신임수령이 도임한다고 한다. 읍에서 십리가 안되어 큰 호수가 작은 산기슭에 임하여 있는 것이 있다. 곧 이른바 시중대인데 터만 있고 정자는 없다. 10리 즈음 하나의 작은 내를 건너니 곧 안변의 경계였다. 조금 쉬고 또 삼십 리를 가서 입석에서 말에게 꼴을 먹였다. 길옆에 맑은 호수는 수 십리가 되었다. 호수 안에는 푸른 봉우리가 섬을 이룬 것이 있고, 드넓은 흰 모래가 에두르고 있으며, 모래 밖에는 망망대해가 있으니, 곧 이른바 학포(鶴浦)이다. 목재(木齋) 홍여하(洪汝河)의 「국도기(國島記)」에 "학포에 이르러 백사봉(白沙峯)에 올라 북해를 바라보았다."고 한 것이 이것이다. 구름과 안개 가운데 아득히 한 점의 청산을 바라보니 푸른 대나무가 우거져있어 묻지 않아도 국도산(國島山)임을 알 수 있다. 아버지께 달려가는 것이 급하고 파도가 순하지 않아서 배를 타고 가 유람하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울 뿐이다. 저녁에 화산(花山) 등역촌(燈驛村)에 투숙하였다. 산야가 광활하고 사람이 사는 곳이 즐비하니 그 북도의 큰 읍임을 상상할 수 있다. 이날 105리를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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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十四日。
陰。曉行十五里。抵通川郡。吏房來現。以本倅言欲進朝飯。辭以非站云。有花山李上舍來住通衙。使德太往問。則曰居在於春陽云。而未能料識也。行十五里。抵叢石亭。是日海霧接天。且風濤堆岩洶涌。舟上下隨波。或上千尺。或直下千尋。猶以削岩萬千。皆六稜。或連陸。或竝海成行。或參差亂立於大洋中。不知危在卽刻。人慾可懼也。登亭上小憩。喚仙亭足臥。叢石之連山枕海。不知其幾萬枚也。午炊叢石津。給十文銅易舟中生大紫蠏二箇。上下奴主不能盡湌。挂脚而來。通川倅使刑吏傳語。衙客亦傳語。是倅姓名金福光。住貞洞。與家君有面分同邑故也。答語而送。花山李上舍謂以追來叢石云。而仍不至。聞通吏言。則欲來安邊云。歷高抵津是通歙間大津。人物蘩華如城市也。踰一嶺。卽歙谷地也。下嶺十里有歙谷。邑內簫篠如村籬。譬之通高邑。又不如也。南倅載喪遞。新倅到任云。自邑不十里有大湖枕細麓。卽所謂侍中臺。而徒有址無榭也。十里許越一小川。卽安邊地境。小歇。又行三十里。立石秣馬。路傍澄湖可數十里。湖中多有靑巒作島。環以白沙浩浩。沙外大海茫茫。卽所謂鶴浦。木齋國島記。有抵鶴浦登白沙峯望北海者是耳。雲霧中遙望一點靑山。綠竹猗猗。不問可知爲國島山也。趍庭急。海波不順。恨不能乘舟抵遊耳。夕投花(火)燈驛村。山野廣闊。人居櫛比。可想其北道雄邑也。是日行一百五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