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문중 자료 > 일기 > 가세잡기(家世雜記)1-안변종유록(安邊從遊錄) > 01권 > 1798년 > 3월 >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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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798년 3월 12일 / 正祖 22 / 戊午
날 씨 맑다.
내 용
아침에 자엽(子燁)이 그 집에서 아침밥을 먹기를 지나치게 청하니 부득이하게 두암(斗岩) 숙주와 함께 그 집에서 먹었다. 좌수(座首) 어른이 병이 나 누워있다는 것을 듣고 뵙지 못했으니 한스러웠다. 식후에 곧 자엽과 함께 해금강(海金剛)을 유람하였다. 배를 탔는데 바람과 물결이 자못 좋지 않아서 배가 파도를 따라 오르락내리락하지만 또한 절로 방해되지 않았다. 물길 5~6리는 이른바 해금강이다. 바다 가운데에 환하게 드러난 면은 전후좌우에 기암괴석과 높은 봉우리가 아님이 없었고, 혹은 송죽이 그 위를 덮었으며, 혹은 진달래가 그 사이에 흐드러지게 피어있어 창해에 그림자가 비쳤다. 누군가는 육지의 금강보다 낫다고 여겼으니 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배에서 내려서 앉을 만한 바위를 골라서 나란히 앉아서 술을 마셨다. 해공(海工)으로 하여금 돌을 뚫어 결명(結明)을 바치게 하니, 선계의 진미도 또한 좋고 여흥이 끝나지 않아서 또 삼포(三浦)를 보려고 하였다. 때문에 육지에 올라 말을 타고 곧장 최우(崔友)의 집에 들어갔다. 작은 상에는 좋은 진미가 가득했으니 천리를 온 굶주린 창자를 채울 만하였다. 곧 주인과 함께 다시 삼일포를 유람하였다. 남쪽으로 5~6리를 가니 이미 푸른 물과 푸른 소나무가 보이고 가옥마다 아름다운 정취가 있었으니 선굴(仙窟)임을 알 수 있었다.
첫 번째 호산암(湖山巖)에 기대어 뱃사공을 불러 승려가 검은 적삼을 입고 배를 저어 왔다. 또 앞에서 손을 올려 절을 하였다. 배를 타고 곧장 사선정(四仙亭)에 도착하였다. 멀리서 넓고 넓은 바닷물을 바라보니 아득히 멀어서 끝이 없었다. 칠성(七星)은 성글고 흰데, 36봉이 둘러서 푸르렀다. 10리의 맑은 호수는 거울 면과 같은데 석양이 비췄으니 사람으로 하여금 바람을 타고 우화등선(羽化登仙)하는 뜻이 있었다. 또 배를 타고 몽천암(夢泉菴)에 갔다. 붉은 복숭아와 흰 오얏 꽃이 산에 가득하고 흐드러지게 피었으니 사랑스러웠다. 또 배를 타고 남으로 가서 석실(石室)을 보았다. 취사선생(取斯先生)이 시를 지어 이르기를, "금강(金剛)의 면목을 점검하여 사선유촉을 찾아 왔네"라고 하였다. 사자암(獅子巖)을 지나 사선정에 이르렀다. 이 바위에 우리 다섯 부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는데, 이는 지난 뒤에 유리(由吏)가 새긴 것이다. 다시 삼포(三浦)에 들어갔는데 갑자기 성명이 선암(仙岩) 위에 걸린 것이 보였다. 인정이 또한 황홀하였다. 단서암(丹書岩) 아래 배를 매고, 육자(六字)와 선자(仙字)를 읽고는 선암으로부터 다시 올라가 매향비(埋香碑)에 올랐다. 사방을 돌아보니 모두 푸른 소나무와 푸른 물이었다. 어떤 이는 앉고 어떤 이는 누웠다. 해가 떨어지려고 하는 데에 이르지 않았을 때 돌아가 해산정(海山亭) 위에 도착하였는데 해가 이미 서쪽에 있었다. 관해(官廨)가 한결같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 수령과 내아(內衙)가 모두 내가 전날 머물던 곳에 들어와 앉아서 나로 하여금 배회하게 하니, 어제의 생각을 어루만졌다. 봉래관(蓬萊館)대호정(帶湖亭)을 유람하였다. 또 최씨의 집에서 밥을 먹고 성서(城西)에서 묵었다. 바로 이른바 동가(東家)에서 밥을 먹고 서가(西家)에서 묵는 것이다. 내일 떠나려고 하기 때문에 밤에 상하의 남녀 수십 사람이 교대로 와서 이야기하고 갔다. 다시 최우(崔友)와 함께 동벽(東壁)의 강에 유람하였다. 책방 통인(通引) 신오달(辛五達)로 하여금 채찍을 잡아 삼호(三湖)의 사이에 쫓아와 맞이하게 하였으니, 이는 어찌 우연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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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十二日。
晴。朝。子燁甚請朝食渠家。不得已。與斗岩叔主食其家。聞座首翁病臥不見。可恨。食後仍與子燁遊海金剛。乘船風濤頗不好。而船隨波上下亦自不妨。水路五六里。所謂海金剛。熒然露面海中。前後左右無非奇石峻峯。或松竹覆其上。或杜鵑擲㯮爛開其間。影倒滄海。或以爲勝於陸地金剛。以其有水故也。下舟擇岩可坐處。列坐酌酒。使海工穿石結明以進。仙味亦好。餘興未已。而又欲觀三浦。故登陸乘馬。直入崔友家。小床佳味。可充千里來困腸。仍與主人復遊三日浦。南去五六里。已見碧水靑松。屋屋有佳趣。可知爲仙窟也。倚第一湖山巖呼舟子。白足穿黑衫掉舟來。又手拜前。因乘船直抵四仙亭。遙望海水灝灝一望無際。七星疏而白。三十六峯環而靑。十里澄湖鏡面照夕陽。令人有乘風羽化之意也。又掉舟夢泉菴。滿山紅桃白李。爛開可愛。又舟而南。見石室。有取斯先生題曰。點撿金剛面目。來尋四仙遺躅云。歷獅子巖。至四仙亭。右巖有吾五父子題名。是去後由吏刻之。再入三浦。忽見姓名掛仙岩上。人情亦足怳惚也。繫舟丹書岩下。讀六字仙字。仍自岩更上。登上埋香碑。四顧皆蒼松碧水。或坐或臥。不至日之將至。歸到海山亭上。日已西矣。見官廨一向頹圮。主倅及內衙皆吾前日所住處入坐。令我俳佪。有拊昨之懷。遊蓬萊館。及帶湖亭。又食於崔家。宿於城西。政所謂東家食西家宿也。明日將發。故夜上下男女數十人迭次來話而去。復與崔友共遊於東壁之江。使冊房通引辛五達執鞭追迎於三湖之間。是豈非偶然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