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문중 자료 > 일기 > 가세잡기(家世雜記)1-안변종유록(安邊從遊錄) > 01권 > 1798년 > 3월 >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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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798년 3월 9일 / 正祖 22 / 戊午
내 용
낮에 기수문(基水門)에서 밥을 해먹고 종일 해변의 모래사장을 다녔다. 인마가 모두 정강이가 빠져 괴로울만하였다. 바닷가에 이어진 주점들은 모두 앞에 큰 바다가 있었다. 쉴 때는 시야가 매우 트이는 것을 깨달았다. 30리를 갔다. 양양부(襄陽府) 상운도(祥雲道)를 지났는데, 또 10리를 갔다. 10리의 송림을 나와서 낙산사(洛山寺) 빈일헌(賓日軒)을 오르니 숙종(肅宗)의 어제시(御製詩)가 있었다. 조금 쉬었다가 돌길을 걸어서 의상대(義相臺)에 올랐다. 이는 의상대사가 선(禪)을 이야기하던 곳이다. 앞에는 끝없는 망양대해를 임했으며, 돌길과 송림은 기이할만하니, 부탄(浮誕)의 말은 논할 것이 아니다. 또 보타굴(寶陁窟)에 올랐다. 굴은 곧 불상을 안치한 곳인데, 두 개의 큰 바위가 툭 튀어나와 바다로 들어가서 그 위에 정자를 지었다. 바닷물이 두 개의 바위 사이에 용솟음치니 기와 위에 흰 물결이 부서졌다. 당에 오르니 사람으로 하여금 모발이 쭈뼛 서게끔 하였다. 지난겨울에는 옥우(屋宇)가 무너져서 당판을 들어 아래를 보니 당 아래에 바닷물이 용솟음쳤는데, 지금은 고쳐서 새로 지었다. 승려가 헛되게 과장하고 무뢰한 무리들이 다 이와 같은데, 이 사이에 이름난 재상과 높은 벼슬아치가 또 따르고 조장하니, 세도가 개탄할 만하다. 고봉암(孤蓬菴)에 쉬면서 묵었다. 무뢰한 중이 소란을 피워 양반을 욕보이기가 다반사와 같았다. 이는 곧 원당(願堂)의 폐해이다. 성대(聖代)의 이러한 일들은 개탄스럽지 아니한가? 탈출하여 저물녘 운무 가운데 10리를 갔다. 수치주점(水峙酒店)에서 묵었다. 이날은 90리를 갔다. 낙산사에서 홍천(洪川) 군수를 지낸 최(崔)의 손자인 아무개가 공부하는 것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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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初九日。
午炊基水門。終日行海濱沙土。人馬皆沒脛可苦。連海酒店皆前臨滄溟。休時覺眼界甚闊。行三十里。過襄陽府祥雲道。又行十里。路出十里松林。登上洛山寺賓日軒。有肅廟御製詩。少歇。步石逕。登義相臺。是義相師說禪之所。前臨望洋無盡。石逕松林可奇。浮誕之說不足論也。又登寶陁窟。窟卽置佛之所。而兩巨巖斗入海中。作亭其上。海水洶聳兩石間。雪漰瓦上。登堂令人毛髮盡豎。前冬見屋宇頹圮。擧堂板下視。堂下海水洶涌。今改而新之。沙門浮誇無賴類多是也。間有巨公名卿。又從而助揚之。世途可慨。休宿孤蓬菴。無賴僧作鬧。辱兩班如茶飯。是則願堂之廢也。聖代此擧不其慨乎。因脫出。黃昏雲霧中。行十里。宿水峙酒店。是日行九十里。洛山寺見崔洪川孫某之做工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