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문중 자료 > 일기 > 가세잡기(家世雜記)1-안변종유록(安邊從遊錄) > 01권 > 1798년 > 3월 >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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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798년 3월 8일 / 正祖 22 / 戊午
내 용
새벽에 출발하여 60리를 갔다. 임영부(臨瀛府)에서 점심을 먹었다. 산수가 아름답고 성읍이 웅장하고 뛰어났다. 이곳은 영동(嶺東)의 도회지이다. 말에서 내려 도보로 소영주각(小瀛洲閣)을 감상하였다. 소영주각은 객사에 있었고, 해일헌(海日軒)은 10보가 되지 않았다. 작은 연못 밖에 돌로 쌓은 성을 둘렀다. 못 안에는 세 개의 섬이 있었다. 가운데 섬에는 육각형의 정자를 지었고, 부평(浮萍)이라 이름 하였는데, 시랑(侍郞) 이집두(李集斗)가 명한 것이다. 소영주각은 참판 홍의한(洪義漢)이 그 각을 중수하여 그 이름을 더해서 고친 것이다. 들어가 선문(仙門)에 올랐다. 작은 배로 노를 저어 들어가니 나도 모르게 맑은 기운이 적삼에 가득했다. 그 용마루와 서까래에 화려하게 꾸며 놓은 것과 붓을 창과 벽에 휘둘러 글씨를 쓴 것은 이는 또 당시 사람의 장기였다. 곧 도보로 성 안을 유람하였다. 누대에서 유람할 만한 곳을 보니, 모두 끝없는 바다물결을 바라보고 있었다. 누대에 있는 단청들도 타는 듯이 빛나서 사람으로 하여금 한갓 눈 힘만 쓰게 하였다. 다시 말을 달려 10리가 되지 못하여 경포대(鏡浦臺)에 올랐다. 10리 경호(鏡湖) 밖 만 리의 큰 바다는 백사장을 사이에 두고 넓고 넓게 펼쳐져 있었는데, 유람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8경의 제일이라 칭함에 소견이 없지 않았다. 그 외에 길에 연달아 있는 호해정(湖海亭), 망해정(望海亭), 창해정(滄海亭), 향호정(香湖亭) 등의 곳은 절경이 아님이 없었다. 만일 한곳을 표계(瓢溪) 산중에 옮긴다면 마땅히 영남 제일일 것이지만 이산(移山)의 어리석음이 있을 것이다. 이때 산 위에 오르니, 푸른 바다는 넓고 넓어 비단 무늬와 같았고 혹은 거세게 산봉우리 같은 흰 파도를 지었다. 바닷가를 따라서 가니, 인마들은 모두 벽제하였다. 이때 큰고래가 바다를 삼키고 물을 토해내는 것이 마치 하늘에 눈과 안개가 가득한 듯하였고, 혹은 뛰어올라 꼬리를 흔들면 마치 거대한 암석과 큰 집과 같았다. 종일 다니면서 또한 무수한 곳을 완상하였다. 멀리서나 가까이에서나 희미한 그 나머지의 크고 작은 배는 대양 중에 가득히 출렁거렸다. 해녀가 옷을 벗고 바닷물에 몸을 적시며 미역을 주울 계획이라고 하니, 웃기지만 기이하며 개탄스럽지만 탄성을 짓지 않음이 없었다. 소석진(召石津) 마을에서 투숙하였다. 이날은 110리를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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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初八日。
曉發。行六十里。中火臨瀛府。山明水麗。城邑雄豪。是嶺東都會也。下馬步賞小瀛洲閣。閣在客舍。海日軒不十步。小池外環石城。池中有三島。中島作六稜亭。名以浮萍。李侍郞集斗所命也。小瀛洲閣者。洪參判義漢重修其閣。增改其名也。入登仙門。棹入小舟。不覺淸氣滿衫。其飾華棟椽。揮灑窓壁。是又時人之長技也。仍步遊城內。樓觀可遊處。皆望無涯海浪。丹雘又然耀。令人徒有用目力。更馳馬不十里。登鏡浦臺。十里鏡湖外萬里滄溟。隔白沙而浩浩。遊人之必稱八景之第一者。不無所見也。其外連路湖海望海滄海香湖等處。無非絶勝。若一移於瓢溪山中。則當嶺南第一也。然有移山之愚也。時登山上。滄海浩浩如錦紋。或蕩蕩作山巒霜雪。■■濱海而行。人馬皆辟易。時有長鯨呼海吐水如滿天雪霧。或躍而掉尾如巨巖大屋。終日行且玩無數。其餘大舸小舟遠而微近而稀。滿蹁於大洋中。海女脫衣洽身於海水。爲拾藿計。無非笑而奇慨而嘆也。投宿召石津村。是日行百十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