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문중 자료 > 일기 > 가세잡기(家世雜記)1-안변종유록(安邊從遊錄) > 01권 > 1798년 > 3월 >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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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798년 3월 7일 / 正祖 22 / 戊午
날 씨 맑다.
내 용
새벽에 출발하였다. 도보로 고개 하나를 넘었다. 40리를 갔다. 노를 저어 하나의 강을 넘어 척주(陟州)의 진영에 도착하였다. 진영의 북쪽에는 공암동해비(孔岩東海碑)가 있었다. 허 선생(許先生)이 이 고을에 부임했을 때 해일의 재난이 있었기 때문에 이를 세웠는데, 뒤에 어떤 한 수령이 보러 와 곧 그것을 훼손하였다. 또 해일의 환란이 곧 하도 두려워 다시 세웠다. 선생은 이미 먼저 그것을 알고 한 본을 베껴서 그에게 주었다. 척주동해비의 세 개의 큰 글자는 옛날 글자를 썼고, 가늘게 새긴 것은 신본(新本)으로 새겼다. 우왕(禹王)의 전서체와 같은 조적(鳥迹)은 힘써 완상하기가 무궁(無窮)하니 찍어 올 수 없는 것이 한스러웠다. 5리를 가서 노주관(魯珠館)에 도착하였다. 곧바로 죽서루(竹西樓)에 올랐다. 누대는 척주 객사 서쪽에 있는데, 묵은 티끌을 끊어 없애고 강을 임한 그윽한 정취는 미수(眉叟)[허목(許穆)]가 제일의 계정(溪亭)이라 칭한 것은 틀림없다고 이를 만하였다. 또한 흰 돌이 석문(石門)에 어지러이 펼쳐졌고, 곧 돌길을 걸어 응벽(凝碧)에 들어갔다. 여기에는 미수가 편액을 건 것이 없으니 한스럽다. 또한 서쪽으로 바라보니 어느 곳에 있는지 알지 못하겠다. 정자 가를 배회하니, 사람으로 하여금 떠나고 싶지 않게 하였다. 낮에 부내(府內)에서 밥을 해먹고 30리를 가서 주점에서 말에게 꼴을 먹였다. 저녁에 우계(羽溪)에서 투숙하였다. 해질 무렵 바다에 파도가 용솟음쳤다. 한 여인이 바다 모래사장에 근심스럽게 앉아 멀리 해수를 바라보니 시름겨운 기색이 있었다. 지아비를 바라는 것 같았지만 의심스럽다. 이날은 110리를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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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初七日。
晴。曉發。步踰一嶺。行四十里。掉舟越一江。到陟州鎭營。營北有孔岩東海碑。蓋許先生莅玆州也。有海溢之患。故立之。後有一倅來見卽毁之。又有海溢之患。乃大恐。改豎之。先生已先知之。寫一本與之。陟州東海碑三大字仍舊字用。細銘用新本刻。禹篆鳥迹。敦玩無窮。恨不能印來也。行五里抵魯珠館。直上竹西樓。樓。陟州客舍西邊。絶去舊塵。臨江幽趣。眉老所稱第一溪亭者。可謂不誣矣。且白石亂開石門。仍石逕步入凝碧。斯眉老揭額無之。可恨。且西至望不知在何處。俳佪亭畔。令人不欲行。午炊府內。行三十里秣馬酒店。夕投羽溪。薄暮海波洶涌。見一女悄坐海沙遙望海水。有愁色。若望夫者然。可疑。是日行一百十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