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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798년 3월 6일 / 正祖 22 / 戊午
날 씨 맑다.
내 용
아침에 또 바람이 부니 근심스럽다. 30리를 갔다. 낮에 흥부진(興夫津)에서 말을 먹였다. 오후에 바람이 조금 불다 그쳤다. 화비령(火飛嶺)갈현령(葛峴嶺)을 넘었다. 그 위에는 어떤 사람이 말을 타고 거문고를 퉁기고 있었고, 어린아이가 말을 끌며 길에서 말을 하였는데 또한 한번 들을 만하였다. 화비령에 비가 있는데, 관찰사 이보혁(李普赫)이 관찰사였을 때의 비이다. 명에 이르기를, "산이 소대(召臺)와 나란히 하니, 못은 황공(黃公)과 같네."라고 하였다. 이곳은 울진(蔚珍) 지역이고, 갈령(葛嶺)삼척(三陟) 땅이다. 소공대(召公臺) 위에 한 개의 비가 있는데, 이는 황익성(黃翼成) 공이 영동(嶺東)에 관찰사로 있은 뒤에 고개 사람들이 그가 가고 난 뒤의 사모함이 있어 대를 쌓아 소공(召公)이라 이름 지었다. 대개 감당(甘棠)의 뜻이다. 오랜 세월로 무너지자 공의 4대손 맹헌(孟獻) 노경(魯卿)이 또 이 도에 관찰사로 부임하여 비를 세웠고, 남곤(南衮)이 비문을 지었다. 오랜 세월로 또 무너지니, 16대손 정식(廷式)이 삼척부에 부임하여 그것을 고쳐 세웠다. 지금은 거의 무너진 것은 탄식할만하다. 이날 도보로 세 네 개의 험한 고개를 넘었으니, 다리의 힘이 다 소진되었다. 소산 아랫마을에서 말을 먹이고, 주막에 갔다. 저녁에 문석진(門石津) 마을에서 묵었다. 종일 매서운 바람이 바다를 끼고, 밤에 또 파도소리가 잠자리에 솟구치니 고해(苦海)라 이를만하다. 이날 110여리를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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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初六日。
晴。朝又風起。可苦。行三十里。午秣興夫津。午後風少止。踰火飛嶺葛峴嶺。上■有人乘馬鼓琴。尺童牽馬。作語路中。亦一可聽。火飛嶺有碑。觀察使李普赫按節時碑也。銘曰。山齊召臺。澤埒黃公。是蔚珍地也。葛嶺三陟地也。召公臺上有一碣。是黃翼成公按節嶺東後。嶺人有去後之思。築臺以召公名之。蓋甘棠之意也。年久頹圮。公四代孫孟獻魯卿。又按節是道。立碑以豎之。南衮撰之。年久又頹仆。十六代孫適或莅三陟府。改豎之。今幾頹圮。可慨也。是日步踰三四峻嶺。脚力殆盡。秣馬召山下村進酒。夕宿門石津村。終日猛風挾海。夜又波聲洶涌枕邊。可謂苦海也。是日行一百十餘里。

주석

甘棠 : 『史記 卷34 燕召公世家』에 周 召公이 감당나무 아래에서의 善政을 기념하여 백성들이 감당의 시를 지어 기린 것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