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문중 자료 > 일기 > 가세잡기(家世雜記)1-안변종유록(安邊從遊錄) > 01권 > 1797년 > 12월 >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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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797년 12월 30일 / 正祖 21 / 丁巳
날 씨 바람이 조금 불다.
내 용
아우가 해저(海底)에서 곧장 왔다. 막내 아버지께서 의인(宜仁)에서 또 뒤따라 이르렀다. 천리 길에 부자 형제 서로 만나 작별하니 매우 다행이었다. 아우의 말을 들어보니, 척숙(戚叔) 김 좌랑(金佐郞)이 한양에서 내려 왔는데, 대인(大人)의 이번 제수에 첨서(添書)했다고 했다. 천은이 더욱 감격스러워 보답할 바를 몰랐다. 도목정사 하는 날 공릉 령(恭陵令)에 몽점된 것 또한 뜻밖이었기 때문이었다. 대인이 들어가 주쉬(主倅)를 만나자 수령은 전에 수망(首望)으로 경주(慶州)를 의망했는데 이 태(李台)가 농담하며 안동(安東)과 서로 바꾸고자 했고, 듣는 사람들은 이 때문에 고을의 크고 부유함을 알 수 있다고 했다고 한다. 점심을 먹고 출발하여 우안(愚安)으로 향했다. 중부(仲父)가 같이 안변(安邊)으로 갔고 계부(季父)는 우안에 함께 갔다. 두 아들은 이에 집으로 돌아왔다. 형편에 구애되어 먼 길 떠나기 어렵고 세밑이 임박하여 더 나아가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목성(木城) 밖으로 뒤따라가서 멀리서 가는 모습을 바라보니 슬픔을 이길 수 없었다. 곧장 고삐를 돌려 아우, 막내 아버지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는 평안했고 중모(仲母) 또한 평안하셨다. 형제가 어머니 슬하에서 수세(守歲)했다. 올해는 마을에 돌림병이 크게 일어 사람들이 문을 닫고 숨을 죽였다. 놀라는 마음을 말로 다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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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三十日。
小風。舍弟自海底直來。■■■■■■■■(父子相見而別大人)季父自宜仁又追至。千里之行。父子兄弟能相見而別。甚幸。聞舍弟言。則金佐郞戚叔自京下來。而大人此除乃添書。■■■■■■■■■■■天恩尤感激不知所以報答也。都政日恭陵令蒙點。又意外也。大人入見主倅。倅言前■望首擬慶州。李台云戲言欲安東相換。聞者以是爲邑之大且富可知云。午後發行向愚安。仲父同■往安邊。季父同往愚安。子二人自此還家。蓋拘勢難作遠遊。■臨歲又難加進也。追往木城外。瞻望行塵。不勝悵黯。卽回轡與舍季還家。母氏平安。仲母亦平安。兄弟守歲于母氏膝下。是歲村染大肆。人皆杜門屛息。驚怳無足言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