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문중 자료 > 일기 > 가세잡기(家世雜記)1-안변종유록(安邊從遊錄) > 01권 > 1798년 > 5월 >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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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798년 5월 1일 / 正祖 22 / 戊午
내 용
새벽에 아버지가 머리 빗고 세수를 하고 객사로 들어갔다. 평명(平明)에 나 또한 보러 갔는데 횃불과 촛불이 밝게 빛났다. 감사(監司)가 나오고 전패 아래에서 반열(班列) 하였다. 각 읍 수령과 중군(中軍), 도사(都事), 호장(戶長) 또한 말석에서 서로 읍하였다. 소리가 나자 일어나고 무릎 꿇고 절하는 의식을 하였다. 자못 조정에서 조회를 벌이는 모습 같았다. 이윽고 예를 마치고 돌아왔다. 아침에 함흥 판관이 만날 것을 청해 아버지가 들어갔다. 나도 곧 통인과 함께 남화루(南華樓)에 올라가 성시(城市)를 두루 살폈다. 객사에 돌아오니 이미 아버지께서 관청에서 아침을 먹고 돌아와 계셨다. 또한 하직 인사를 하는 일 때문에 감영에 들어갔다. 나도 곧바로 재촉해서 밥을 먹고 남문을 나와 10여리를 가서 태조대왕 본궁에 도착했다. 지형은 곧 300리 큰 들이 이곳에서부터 바다를 만나 끝났으며 그 끝에는 큰 루가 서 있었다. 풍패루(豊沛樓)라는 편액이 걸려 있었는데 이정운(李鼎運)의 글씨다. 루 뒤쪽에 큰 사당이 있으니 사대의 위패를 모시고 있었다. 그런데 궁관(宮官)이 마침 감영에 들어가서 살피지 못하고 다만 뜰 가장자리에서 머뭇거렸다. 노송 3그루가 있었는데 지지대로 모두 유지되고 있었다. 푸른 이끼, 거친 가지로 수 백년 바람과 비를 겪었다고 하는데 이 나무들은 태조가 손수 심은 것이다. 루 앞에는 작은 연못이 있었는데 연못 가운데에 작은 섬이 있고 소나무와 버드나무로 에워쌌으며 모래와 돌로 쌓아 올렸다. 경치가 그윽하고 한가하여 이 경내에 들어서면 보지 않을 수가 없는 곳이었다. 고삐를 돌려 다시 함흥 감영에 들어갔다. 동문 위의 낙민루(樂民樓)로 올라가니 아버지께서 이미 출발하여 기가 루 위에 있었다. 모시고 뒤따르며 정답게 거니니 해가 저무는 것도 알지 못했다. 루는 절벽위에 있었는데 수 백리 평야가 둘러싸서 바다와 같았다. 추녀 아래 10리는 모래사장이고 백리는 푸른 강이었으며 강 위에는 만척의 무지개다리가 있었다. 참으로 천하에 기이한 광경이다. 북쪽에 와서 우리나라를 생각하면 다시 이와 같이 넓은 들과 긴 다리는 없을 것이다. 지은 시들도 또한 많이 벽 위에 걸려있었으나 모두 경치에는 미치지 못했다. 오랜 시간 있다가 성문에서 내려와 만세교(萬歲橋)를 건너 정평부(定平府)로 향했다. 정평 부사가 감영에 들어와서 또한 함께 뒤따라 왔다. 남은 흥을 채울 수가 없어서 자주 고개를 돌리니 탄 나귀에서 고꾸라질 것 같았다. 안동 사람 중에 낙민루에 오른 자가 몇이겠는가. 만약 이 후에 다시 올 수 있다면 어찌 따르지 않겠는가. 30리를 가서 경계에 있는 마을에 도착하니 수령은 먼저 갔고 나는 한참 있다가 길을 출발하였다. 산 중턱에 올라가 바다 같이 넓은 물을 보았으니 광포(廣浦)라 불리고 바다로 통하는 입구였다. 20리를 가서 정평부에 이르렀다. 해가 기울지 않았지만 앞길의 역참이 멀어서 묵게 되었다. 수령이 곧바로 나와서 만나 보았고 아버지 또한 잠시 보러 왔다. 저녁 후에 기녀 2명이 수청하려고 하였으나 돌아가게 하였다. 곧바로 취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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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五月
初一日。
曉。父主梳洗入客■客舍。平明。我亦出見。炬燭照耀。監司出來。作班列於殿牌下。各邑守令及中軍都事戶長亦相揖於末席也。作樂興跪之儀。頗有朝班貌樣。已而罷歸。朝。咸判請見。父主入去。我則與通引登南華樓。偏觀城市。而到舍。父主已朝食於本官還次。又以下直次入營門。我則促飯。出南門行十餘里。抵大祖大王本宮。地勢則三百里長郊至此。遇海盡。盡起大樓。揭額豊沛樓。李鼎運筆也。樓後有大廟。安四代位牌。而宮官適入營門。未能奉審。只躊踷於庭畔。有老松數三。以丫皆扶持之。蒼苔苦幹經累百年風雨云。是太祖手植也。樓前有小塘。塘中有小島。圍以松柳。築以沙石。景慨幽閑。入此境不可不見處也。還轡復入咸營。出東門上樂民樓。父主已發旆上樓矣。陪後穩遊。不知日之將夕。樓臨絶壁上。數百里平郊環之如海。軒下十里平沙。百里淸川。川上有萬尺虹橋。眞天下奇觀也。北念我國。更無如此野之廣。此橋之長。題詠亦多懸於壁上。而皆不及景也。移時自城門下去。渡萬歲橋向定平府。定平倅入營門亦同來隨後。餘興未足。■■頻回首欲倒騎驢也。安東之人登樂民樓者幾矣。若此後更來。則豈非有協耶。行三十里抵地境村。主倅先去。移時後發。半山上見大水如海。云是廣浦。自海口通也。行二十里抵定平府。日未夕。而前路站遠。故仍宿。主倅卽出來相見。家君亦暫入見。夕後。守廳妓二人使之還送。卽就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