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문중 자료 > 일기 > 가세잡기(家世雜記)1-안변종유록(安邊從遊錄) > 01권 > 1798년 > 4월 >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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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AC+K09+KSM-WM.1797.4717-20170630.013610200002_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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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798년 4월 4일 / 正祖 22 / 戊午
날 씨 맑다.
내 용
해저 김 숙부(海底金叔主)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행차가 출발하였다. 아버지와 여러 숙부를 모시고 남천교(南川橋) 앞머리에 이르러 헤어진 뒤 말에 올라 타 멀리서 길 가는 것을 바라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 고개를 돌렸다. 관아로 돌아올 때 사장(射場)의 무법(武法)을 보려고 하다가 한량 무리들에게 욕을 당했다. 돌아온 뒤에 동각(東閣)에서 그 무리를 잡아들여 곤장 5~6대를 쳤다.
저녁에 흡곡 공형(歙谷公兄)이 보낸 문서가 도착하였는데 지난달 21일 영덕(盈德) 해척(海尺)이 바다에 나가서 왜선을 보았고, 22일 또 한척의 왜선을 보았다고 하였다. 각 읍에 공문을 보냈고 그들로 하여금 적을 살펴 경계하였으나 또한 마을사이의 소란거리가 될 수 있었다.
부내(府內)에 무과 출신이 도문(到門)했다. 무선생(武先生)인 군적감관(軍籍監官)으로 하여금 신참을 불러 잡기(雜技)를 펴게 했다. 의지할 곳 없는 관비(官婢)가 가인을 업으니 곧 백목 4필을 납부하여 그것을 주었다. 이 또한 전부터 있던 례(例)라고 하였다. 신출자(新出身)는 돈이 많은 자로 이미 금위초관수문장(禁衛哨官守門將) 으로 삼아 말미를 주어서(給由) 왔다. 약재로 사용할 양을 잡아 오는 일로 색리를 여도(如島)로 보냈다.

이미지

원문

初四日。
晴。海底金叔主發還鄕之行。陪父主曁諸叔主。出至南川橋頭。別後上馬。遙望行塵。不覺汶淚回首也。還衙時欲觀射場武法。見辱於閑良輩。還後自東閣捉入渠輩。決棍五六度。夕自歙谷公兄文狀來到。前月二十一日。盈德海尺。出海見倭船。二十二日。又見一隻倭船。文移各邑。使之候望。亦足爲村間騷屑。府內武出身到門。使武■先生軍籍監官。呼新使逞雜技。■以無依官婢負家人。卽納白木四疋給之。是亦前例云。新出身是多錢者。故已爲禁衛哨官守門將。給由來矣。以藥材所入捉羊事。送色吏入如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