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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616년 10월 2일 / 光海8 / 丙辰
내 용
선사에 배알했다. 날이 밝기 전에 행장을 꾸려 해가 뜨자 사빈(泗濱)으로 향하였다. 선생(先生)의 체후는 한결같았다. 조정(朝廷)에서 최천건(崔天健) 등 3인을 삼적(三賊)으로 삼았고 한준겸(韓浚謙) 7신하를 육흉(六兇)으로 삼았으며 이미 세상을 떠난자는 관직을 삭탈하고 이때 살아있는 자는 유배를 보냈다고 하였다. 일선인(一善人) 김양(金瀁), 김홍(金泓)을 만나 선생께 인사를 드렸다. 저물녘에 인사를 하고 돌아왔는데 선생께서 서운하게 여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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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二日。
謁先祠。未明治行。日出向泗濱。先生道體如常。聞朝廷以崔天健等三人爲三賊。韓浚謙七臣爲六兇。已故者削奪官爵。時存者。皆遠竄云。一善人金瀁金泓適拜先生。將夕辭歸。先生以爲缺然云。

주석

최천건(崔天健, 1538~1617): 조선의 문신. 자는 여이(汝而), 호는 분음(汾陰), 참의(參議) 희(禧)의 아들. 1588년(선조21) 진사(進士)가 되고, 이 해 알성문과(謁聖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1593년(선조26) 거산도 찰방(居山道察訪)을 거쳐 병조와 예조의 좌랑(佐郞), 문학(文學)·우승지(右承旨)·도승지(都承旨)·호조 참의(戶曹參議)를 지냈다. 1598년 진주사(陣秦使)로 명나라에 다녀온 뒤 해주 목사(海州牧使)·호조 참판(戶曹參判)을 역임, 1603년 대사헌으로 동지춘추관사(同知春秋館事)가 되어 임진왜란으로 소실(燒失)된 역대실록(歷代實錄)의 중간(重刊)에 참여했다. 그 후 대사간·형조와 이조의 판서 등을 지내고, 1608년(광해군 즉위) 유영경(柳永慶)의 일파로 몰려 삭직(削職), 문외출송(門外黜送)되었다가 1611년 복관(復官) 되었으나 이듬해 김직재(金直哉)의 무옥(誣獄)에 관련되어 파직되었다. 1616년(광해군 8) 김제남(金悌男)의 일파로 몰려 온양(溫陽)에 안치(安置), 이듬해 병사(病死)했다. 삼적(三賊): 허욱, 최천건, 성영을 의미한다. 육흉(六兇): 서성, 신흠, 한준겸, 박동량, 한응인, 허성을 의미한다. 김양(金瀁): 교위 김취연(金就硏)의 증손이며, 아들은 삼매당(三梅堂) 김하정(金廈梃)이다. 김양은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과 한강(寒岡) 정구(鄭逑)를 스승으로 섬겼으며, 1605년(선조 38)에 진사가 되었다. 병자호란의 소식을 접한 이후 누차 벼슬을 내렸으나 응하지 않고 두문불출하면서 서사(書史)에 관심을 가졌다. 문집으로 『양탄선생문집(陽灘先生文集)』이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