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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616년 9월 7일 / 光海8 / 丙辰
내 용
아침에 선생(先生)을 모시고 이야기를 하였다. 류성유(柳聖兪)[류요신(柳堯臣)]가 유서(遺書 : 유언)를 썼는데 그의 아들이 따르지 않을까 염려되어 여러 친구들에게 두루 고하였다.【성유는 어릴 때 가난하여 아버지의 죽음에 석회(石灰)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래서 유서에 자신이 죽은 후에 석회를 사용하지 말라고 하였다.】 또 퇴계(退溪)가 권경수(權景受)에게 답한 것을 인용하여 그것을 증명하였다. 【경수는 영가(永嘉)[안동(安東)] 사람이다. 경수는 용궁현감(龍宮縣監) 김팔원(金八元)의 장사에 석회를 사용하고자 하였다. 용궁은 어릴 때 빈천(貧賤)하여 그의 아비에게 석회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래서 유언에도 자신에게 사용하지 말하고 하였다.】나와 낙형(樂兄)은 일을 매우 불편하게 여겼었다. 성유는 아버지 때문에 차마 할 수 없었으니 정이 간절한 것이다. 내가 죽은 뒤에 정시번(鄭時藩)이 아버지의 장사를 치르면서 사용하지 않는 것도 정이 간절함이다. 이는 미리 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에 와서 성유가 퇴계의 편지를 가지고 선생께 질문을 하니 웃으며 말하길 "이 일은 매우 결단하기가 어렵구나. 퇴계의 설도 한때 임시로 나온 것인데 편지 가운데 또 의심나고 어려운 부분이 있으니 이것은 다른 사람이 결정 할 수 없다."고 하였다. 나와 2~3명의 벗이 각자 남은 술 한잔을 올렸다. 장덕회(張德晦)[장광현(張光顯)]도 가지고 온 술을 올렸다. 이때 이경배(李景培)[가화(可和)]도 왔다. 가화 아버지는 한편으로는 선생의 8촌이고, 한편으로는 10촌인데 자주 보지 못했다고 선생께서 말씀하시니 가화가 부끄럽고 죄송해하며 말을 할 수 없었다. 점심을 먹은 후 인사를 하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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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七日。
朝侍話先生。柳聖兪爲遺書。徧告諸知舊。恐其子之不遵。【聖兪少貧。父沒不用石灰。故爲書不用灰於身沒之後。】又引退溪答權景受以證之。【景受。永嘉人也。景受欲灰於金龍宮八元之葬。龍宮少貧賤。不用灰於渠父。故遺命亦不用於渠身。】余及樂兄。以爲事甚未安。聖兪爲父不忍。則情之切也。汝死之後。時藩治父之葬而不用。亦情之切也。此不可豫爲之說。今來聖兪持退溪書。質于先生。笑曰。此事甚難斷也。退溪之說。亦出於一時之權宜。而書中亦有疑難處。此他人不可決也。余及二三友。各呈餘酒一杯。張德晦亦呈所佩酒。時李景培可和亦往。可和大人。於先生一邊八寸。一邊十寸。屢以不相見爲辭。渠甚慚悚。無以爲辭。午後辭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