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문중 자료 > 일기 > 모당일기(慕堂日記) > 04권 > 1616년 > 8월 >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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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616년 8월 19일 / 光海8 / 丙辰
내 용
선사에 배알했다. 이무백(李茂伯)[이윤우(李潤雨)]이 와서 이야기를 하였다. 오랫동안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하니 옛정을 어떻게 견디겠는가! 김계남(金季男)의 죄를 따져 묻고, 최기(崔沂)도 반역죄로 논단(論斷)했다고 하였다. 점심을 먹은 후 채정응(蔡靜應)[채몽연(蔡夢硯)]이 화암(畵巖)에서 제(齊)를 파하고 와서 이야기를 하였다. 갑자기 희로(希魯)[손처약(孫處約)]이가화(李可和)[이경배(李景培)], 원장(院長) 서행가(徐行可)가 제사음식인 술과 안주를 가지고 와서 적막함을 위로하며 해가질 무렵 모두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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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十九日。
謁先祠。李茂伯【潤雨】來話。移酒話。舊情何堪。追刑金季男。崔沂亦以逆罪論斷云。午後蔡靜應自畵巖罷齊來話。俄而希魯及李可和徐院長行可。佩餕餘酒肴來。慰寂寞。日暮皆歸。

주석

김계남(金季男): 김계남은 도적으로 1617년 공초를 겪음 김계남이 아니라 김제남이 아닌지 의심됨. 최기(崔沂): 1623년 3월 15일 년목사 최기(崔沂)의 관작을 회복할 것을 명하였다. 이에 앞서 최기가 해주 목사(海州牧使)였는데, 그 고을 사람이 이이첨과 한찬남(韓纘男)의 뜻을 받들어 무고하여 대옥을 일으키고자 하였다. 이에 최기가 그 흉계의 음흉함을 미워하여 그 사람을 장살하였다. 이첨 등은 흉계를 부리지 못하게 된 것을 유감으로 여겨 남몰래 심복인 무인 유세증(兪世曾)을 파견하여 죄를 날조해서 모함하게 하였다. 또 백대형(白大珩)을 감사로 삼고 정영국(鄭榮國)을 해주 목사로 삼아 온갖 방법으로 얽어매어 드디어 대옥을 이루었다. 그리하여 최기는 장하에서 죽었는데, 추가로 시신이 도륙을 당하고 온 가문이 어육이 되었다. 온 나라 사람들이 모두 원통해 했는데, 이에 이르러 맨 처음으로 신원과 복관을 명하고 뒤에 추증할 것을 명하였다. 화암(畵巖): 대구광역시의 동구 지묘동과 북구 연경동 경계지(연경서원 마을)에 있는 대원사 입구에 위치한 하식애(河蝕崖)이다. 동화천에 인접한 도로변에 있다. 동화천에 의해 침식되어 형성된 일종의 하식애로 자색의 퇴적암으로 구성된다. 『대구읍지』에 "연경서원(硏經書院)은 대구부에서 북쪽으로 20리 거리에 있는 화암 아래에 있다."라고 하여 화암의 존재를 알 수 있다. 「연경서원기」에 화암에 관해 "화암은 연경서원의 서쪽을 지켜준다. 붉고 푸른 절벽이 우뚝하게 솟아 기이한 형상을 보여 그림 같이 아름다우니 '화암'이란 이름을 얻게 되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대구읍지』에 퇴계 이황(退溪 李滉, 1501~1570)의 '연경화암(硏經畵巖)'에서도 화암의 수려한 경관을 화려한 글로 잘 나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