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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616년 5월 24일 / 光海8 / 丙辰
내 용
아침에 신기(新基) 사람을 시켜서 보리 뿌리를 갈고 콩을 심었다. 낮에 제광정(霽光亭)에서 쉬었는데, 청도수령이 지나다가 머물면서 한참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최기(崔沂)가 황해감사(黃海監司)에게 한 번의 고변을 당했는데, 말이 매우 망령되고 실제가 없다고 생각하여 최기가 번거롭게 위에 주달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 곤장을 때리도록 명을 지시하였다. 조정에서 듣고서 주상이 일산을 걷고서 를 추국하니, 말하기를 "그 사람이 매우 도리에 벗어나고 실제가 없었습니다."라고 하였다. 추국 내용에서 문창부원군(文昌府院君) 류희분(柳希奮)과 병조판서 삼부자, 영상(領相)의 아우와 정 우상(鄭右相), 한음(漢陰)[이덕형(李德馨)]의 아우와 세 아들이 동정(同情)했다고 한다. 개녕(開寧) 문관(文官) 정인서(鄭獜瑞)가 상소문을 지었는데, 그 뜻이 신안(新安) 이창(李昌)의 글과 더불어 같았다. 정인서의 조카 또한 정 좌상(鄭左相)을 고발했다. 좌상이 전하는 말에, 감사 또한 수감되었다고 한다. 상주(尙州) 황봉수(黃鳳壽)가 재산은 많았지만 고향에서 인심을 얻지 못하여 올봄에 경성 집에 들어가 거처했는데, 열흘 만에 또한 역당(逆黨)이라는 참소를 입어 지금 이미 산거(傘去)했으니, 상주의 사람들이 매우 두려워한다고 한다. 저물녘에 당에 돌아갔다. 선사에 배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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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二十四日。
朝以基人耕麥根種太。午憩霽光亭。淸道倅過駐移時話。崔沂爲黃海監司。有一告變。語甚狂妄不實。崔謂不可煩上聽。杖下指命。朝廷聞而上卷傘。沂推鞠。則云其人極爲狂悖不實。推內指文昌柳希奮及兵判三父子領相舍弟及鄭右相漢陰弟三子同情云云。開寧文官鄭獜瑞作疏章。其指與新安李昌文同。瑞之猶子。亦告鄭左相。左相傳言。監司亦爲被囚云云。尙州黃鳳壽有富産。而不得於鄕里。今春入居于京城下第。纔旬。亦被逆黨之訢。今已傘去。尙州人甚恐云云。將夕還堂。謁先祠。

주석

세 아들 : 이여규(李如圭), 이여벽(李如璧), 이여황(李如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