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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624년 3월 26일 / 仁祖2 / 甲子
내 용
선사(先祠)에 배알했다. 민여익(閔汝益)이 와서 서울소식을 전했다. 군대에 아직 나아가지 못했기 때문에 행재소(行在所)의 의량(義粮) 60석은 나라의 용갈(用竭)에 도움이 되니 임금이 매우 가상히 여기며 칭찬했으며, 조정사람들 모두 미사(美事)라 여겼다. 당초에 기의(起義)한 향인들이 물자 보내는 것을 꺼리며 이구동성으로 불가하다 했다. 나만이 행할 것을 주창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얼마나 고을 유사들의 큰 수치가 되었겠는가? 당시 들으니 상산(商山), 일선(一善), 옥산(玉山)등의 군들이 모두 먼저 행했으나 영가(永嘉)는 매우 부끄럽게도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었다. 흰 무지개가 여러 차례 해를 꿰뚫었다. 남산(南山)에서 매일 밤 불렀으나, 소변 끼만 있어도 싸버리니 대변이라면 어찌 하겠는가? 저녁에 채명보(蔡明甫)도 왔다. 이정화(李挺華)가 와서 보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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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二十六日。
謁先祠。閔汝益來傳京奇。以未及赴軍。行在義粮六十石。助國用竭。上甚嘉奬。朝人皆以爲美事。當初起議鄕人。憚於資送。同聲不可。老生獨唱勸行。不爾幾爲邑儒之大羞。時商山一善玉山聞等郡。皆先行。而永嘉深恥不及也。時白虹屢貫日。南山每夜呼。而有小便則已放。而大便何以爲之。夕蔡明甫亦來。李挺華來見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