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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622년 4월 5일 / 光海14 / 壬戌
내 용
기운이 불편했다. 늦은 아침 인사하고 돌아오다가 정여섭(鄭汝燮)의 강사(江舍)에 들려 쉬었다. 정(鄭)이 먼저 사과했다. 지난날 연경서원에서 말한 망동 때문이었는데, 여전히 낙재(樂齋)를 입사(立祀)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운운했다. 또 계동(溪東) 역시 입사(立祀)하지 않을 수 없다. 영교(永校)에 나쁜 중놈이 불을 질렀는데, 군의 유생들이 설욕하지 못하자, 계동이 주변 군(郡)의 유생들을 창도하여 상소를 올렸다. 특별히 경차관(敬差官)을 내려 보냈는데, 승려를 다스리고 실정을 파악하여, 흉하고 강한 여덟아홉 명을 베어버렸다. 당시 사림의 쾌거였다. 이 사람을 어찌 뭇 유학자와 더불어 부패했다고 운운하는가? 일모가 되기 전에 당(堂)으로 돌아와 선사(先祠)에 배알했다. 양경수(楊景洙)가 같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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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五日。
氣愆。晩朝辭還。過憩鄭汝燮江舍。鄭也先謝。前日硏經發言之妄。仍言樂齋不爲立祀。則不可云云。又言溪東亦不可不立祀。永校爲惡僧所焚。郡儒不得雪憤。溪東倡赽旁郡之儒。上疏。特下敬差治僧得情。誅其凶强者八九▣(大)人。時士林大快之。此人豈與凡儒同腐乎云云。未暮還堂。謁先祠。楊景洙同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