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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AC+K08+KSM-WM.1614.2726-20160630.0653102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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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620년 5월 11일 / 光海12 / 庚申
날 씨 종일 바람 불다.
내 용
선사에 배알했다. 일기를 편수했다. 기관(記官) 서흥문(徐興門)이 배알하러 왔다. 지난겨울 뜻밖의 재난으로 의금부 옥리가 이에 대해, "경성(京城)에서 기근이 든 형상은 차마 들을 수 없을 지경이다. 재상 송영구(宋英耈)는 일찍이 우리 도에 순찰사로 온 자인데, 그는 가산을 모조리 팔아 생활 할 수 없었다. 하루는 방문하러 온 자가 있었는데, 그는 지쳐 누워서 말도 하지 못했고 인사도 살피지 못하였다. 곧바로 성내에 통지하여 관에 전달하여 쌀 홉으로 그를 구휼했다고 한다."고 했고, 그 전에 굶어 죽었다고도 전한다.

이미지

원문

十一日。
終風。謁先祠。修日記。記官徐興門來謁。前冬以无妄災苦。王獄者因言。京城饑饉之狀。不可忍聞。宋相英耈魯〖曾〗巡察本道者。盡賣家産而不能活。一日有來訪者。困臥不語。不省人事。卽通城內達官。合米以賑之云。曾傳飢死云。

주석

송영구(宋英耈, 1556~1620): 본관은 진천(鎭川). 자는 인수(仁叟), 호는 표옹(瓢翁)·모귀(暮歸)·일표(一瓢)·백련거사(白蓮居士). 아버지는 송령(宋翎)이며, 어머니는 진주 하씨(晉州河氏) 하세준(河世濬)의 딸이다. 부인은 해평 윤씨(海平尹氏) 윤승경(尹承慶)의 딸이다. 1576년(선조 9) 우계(牛溪) 성혼(成渾)의 문하에서 수업하였다. 1584년(선조 17) 서총대(瑞蔥臺) 정시(庭試)에 합격하였고, 이듬해 승정원 주서가 되었으나 낙향하였다. 1592년(선조 25) 체찰사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종사관이 되었는데, 당시 주지번(朱之蕃)과 인연(因緣)을 맺었다. 1606년(선조 34) 주지번이 정사(正使)의 신분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와 송영구를 찾아 전주에까지 다녀갔다고 전한다. 1597년(선조 30) 전주에서 임진왜란을 피해 제천으로 들어갔고, 이듬해 충청도 순찰사 김신원(金信元)의 종사관이 되었다. 1599년(선조 32) 충청도사, 1600년 이조 좌랑을 거쳐 1601년 청풍 군수(淸風郡守)가 되었다. 1610년(광해군 2) 세자시강원 필선이 되었고, 승정원 동부승지와 우부승지를 거쳐 좌부승지가 되었다. 이듬해 형조 참의, 경상도 관찰사를 역임하였다. 한편 1613년(광해군 5) 성절사로 북경에 다녀왔고, 이듬해 오위도총부 부총관이 되었다. 저서로 3권 2책의 『표옹문집(瓢翁文集)』이 있다. 후에 예조 판서에 추증되었고, 시호는 충숙(忠肅)이다. 전주 서산사우(西山祠宇)에 배향되었으며,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동룡리에 송영구의 제각(祭閣)인 우산정사(紆山精舍)가 있다. 청풍문화재단지에는 송영구 송덕비(宋英耈頌德碑)가 있는데, 이 비는 제천시 청풍면에 있던 것을 옮겨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