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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620년 4월 27일 / 光海12 / 庚申
날 씨 바람 불다.
내 용
오매정(五梅亭)에 들어갔다. 류호(柳瑚)가 보러 왔다가 갔다. 서건보(徐建甫) 또한 와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바람을 무릅쓰고 움직인 것이라 몸이 갑절 상했다. 낙 형(樂兄)의 사위(祀位)를 세우는 일 때문에 향사들이 오늘 선사재(先査齋)에 모였기에 편지를 써서 사람을 보내어, 계동 선생(溪東先生)[全慶昌]의 사위(祀位)와 병립하는 일을 힘써 진설했다. 선생은 청빈함이 금세에 보기 드물어 전배(前輩)들도 칭송하여 말하였다. 벼슬길에 나아가는 것을 급급하게 하지 않고, 늘그막에는 『주사서절요(朱子書節要)』를 매우 좋아했다. 나라의 종계(宗系)를 고쳐야 할 일이 생기자, 이때의 급선무이자 일의 대절(大節)이라 여겼다. 그래서 선생이 벼슬 하던 초기에 의리를 드높여 홀로 상소하면서 ‘연산(燕山)에 뼈를 묻는다[埋骨燕山]’는 것으로 언사를 삼아 당시 식자들은 그것을 대단하다고 여겨 (종계를) 고쳐야 한다는 청을 상주(上奏)하였기에 이로부터 (종계변무가) 시작되었으니, 나라에 큰 공이 있음을 또한 볼 수 있다. 어찌 그의 성명(姓名)을 후세에 매몰시키겠는가? 저녁에 답장을 받았는데, 향사들이 모두 모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후일을 기다려 의논을 정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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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二十七日。
風。入五梅亭。柳瑚來見去。徐建甫亦來話。觸風而動。氣甚倍傷。以樂兄立■(祠)祀事。鄕士今會仙査。裁書送人。溪東先生竝立事力陳之。先生淸苦。今世罕見。而前輩所稱道。而不急急於仕進。晩歲甚好朱子書節要。至若改國宗系。時之急務。事之大節。而先生筮仕之初。抗義獨疏。以埋骨燕山爲辭。當時識者偉之。奏改之請。自此始。其有大功於國。亦可見矣。豈以姓名埋沒於後世乎。夕得答書。以不齊集。俟後日定議云。

주석

전경창(全慶昌, 1532~1585): 본관은 경산(慶山). 자는 계하(季賀), 호는 계동(溪東). 1555년(명종 10)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1573년(선조 6)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관직은 검열·정언에 이르렀다. 성리학의 태두인 이황(李滉)의 학통을 이어받았으며, 한때 가야산에서 학문 연마에 전념하기도 하였다. 종계변무(宗系辨誣)의 중대함을 강조하며, 일반사신이 겸하여 추진하던 것을 전담사신을 파견할 것을 상소하여 실시하게 하였다. 대구의 연경서원(硏經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 『계동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