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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620년 2월 20일 / 光海12 / 庚申
날 씨 비가 흩뿌리다. 낮에 개다.
내 용
어떤 사람이 와서 문병하고는 이어서 강우(江右)의 기담을 전하였다. "객 중에 재상 내암(來巖)[정인홍(鄭仁弘)]을 모시는 자가 ‘금년의 곡가가 높아서 포(布) 한 필(疋)에 정조(正租) 대여섯 말[斗]의 가격이라고 합니다.’고 하자 내암이, ‘내가 들은 것과 다르다. 내가 듣기에 ‘정조(正租) 한 말[一斗]에 포 백 동(同)’이라고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때 정조(鄭造)가 감사(監司)가 되어 포동(布同)을 거두기를 매우 많이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정조(正租)’는 ‘정조(鄭造)’를 이르고, ‘한 말[一斗]’은 ‘한 마디의 말[一言]’을 이른다 합니다. 궁실 짓는 역사를 또 일으켜 경시(京市)의 포 가격이 다만 일곱 여덟 승(升)인데도 공홍도(公洪道, 충청도)경기도의 백성들이 굶주려 죽는 자기 매우 많았습니다. 어느 한 신하가 ‘금년에 기아가 매우 많습니다’고 말하자 주상은 ‘비록 흉년이라도 내 먹는 것이 없다.’고 하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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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二十日。
灑雨。午晴。有人來問疾。仍傳江右奇談云。客有侍■(者)坐來相者曰。今年谷貴。一疋價五六斗。來曰異乎吾所聞。吾聞正租一斗布百同。時鄭造爲監司。徵于布同甚多。正租謂鄭造也。一斗謂一言。宮又起而京市布直。只七八升。公洪京畿民多飢死。有一臣言。今年飢{飠+荒}甚多。上曰雖荒。吾无所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