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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614년 7월 24일 / 光海 6 / 甲寅
내 용
서입지(徐立之)를 초청하여 종일 이야기를 나누었다. 전한(全僴), 전흥업(全興業), 구호신(具好信)사훈(士訓)[최계(崔誡)]의 집으로부터 지나다가 들어왔는데, 첫머리부터 각 안(案)의 잘못을 말하면서 행보(行甫)[서사원(徐思遠)]와 나에게 허물을 돌렸다. 내가 답하기를, "형세상 어쩔 수 없었다."라고 하니, 그들이 "무슨 말인가?"라고 하였다. 내가 "자세한 일은 말할 것도 없지만, 4~5년 동안 낙형(樂兄)[서사원(徐思遠)]을 능욕하면서 못하는 짓이 없었다."라고 하였다. 숙근(叔勤)[전숙근(全叔勤)]이 대답하려고 하자 한(僴)[전한(全僴)]이 눈짓으로 말렸다. 저녁에 최진백(崔鎭伯)이 술을 가지고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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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二十四日。
邀徐立之終話。全僴全興業具好信。自士訓家過入。首言各案之非。歸咎行甫及余。余答曰。勢所不得已也。彼曰何謂。曰細事不足言。四五年來。侵凌樂兄。靡所不至。叔勤將欲答。僴也目禁。而夕崔鎭伯持酒來見。

주석

최계(崔誡, 1567∼1622) :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자는 사훈(士訓), 호는 태동(苔洞)이다. 1591년(선조 24) 무과에 급제하여 만경현령을 지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대구에서 의병을 규합하여 전공을 세웠다. 광해군 때에는 대북파의 전횡이 심하여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였다.병조참판에 추증되었으며, 대구평천사(平川祠)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