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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619년 3월 26일 / 光海11 / 己未
내 용
선사에 배알 하였다. 아침을 먹은 뒤에 사수(泗水)로 향하였다. 양경사(梁景泗)김선경(金善慶)이 따라왔다. 마침 신안(新安) 수령도 3일 머물렀다. 성현 찰방(省峴察訪)과 예조좌랑(禮曹佐郞)이 왔는데 매우 어수선 하였으므로 늙은이가 길을 나설 때가 아니었다. 이미 흩어져 날이 저물어 당에 돌아가지 못하고 그대로 유숙하였다. 사람 음식과 말 먹이가 모두 궁색하여 신지(新之)[이탁(李濯)], 무백(茂伯)[이윤우(李潤雨)] 모두 왔다가 흩어져 떠났다. 영천(榮川: 현재 영주) 박회무(朴檜茂)와 함께 서재(書齋)에서 이야기를 하였다. 박(朴)은 찰방(察訪) 박록(朴漉)의 아들이고 승지(承旨) 박승임(朴承任)의 손자이다. 승지는 스스로 소고(嘯皐)라 불렀다. 그는 선생께 소고의 묘갈문을 여러 차례 청하였으나 이때는 허락을 받지 못하였다. 그의 아버지도 나에게는 오랜 벗이고, 성실함이 일찍부터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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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二十六日。
謁先祠。朝後向泗水。景泗善慶從。時新安倅亦留三日矣。省峴察訪禮曹佐郞適來。擾甚非老生出行之時也。旣散。日暮未果還堂之計。仍留宿。人食馬飼俱窘。新之茂伯皆來散去。榮川檜茂同話書齋。朴也察訪漉之子。承旨承任之孫也。承旨自號嘯皐。渠屢請嘯皐碑〔碣〕文於先生。時未蒙許可者也。渠大人。亦余之知舊人也。款若夙見。

주석

박회무(朴檜茂, 1575~1666): 조선 중기의 의사(義士).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중식(仲植), 호는 육우당(六友堂)·숭정야로(崇禎野老). 형(珩)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목사 승임(承任)이고, 아버지는 의금부도사 록(漉)이다. 정구(鄭逑)·정경세(鄭經世)의 문인이다. 1606년(선조 39)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이 일어나서 왕이 강화도로 몽진하자 의금부도사로 왕을 호종하였다. 1636년(인조 14)에 소를 올려 시정(時政)과 서북관방의 허술함을 논하고 선정양병(選丁養兵 : 성인남자들을 선발하여 병사를 기름.)의 방안을 제시하였다. 이 해 겨울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출정하였으나 이미 화의가 성립되어, 통곡하며 되돌아와 두문불출하고 여생을 마쳤다. 영천의 산천서원(山泉書院)에 제향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