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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618년 12월 23일 / 光海10 / 戊午
내 용
설(渫)[손설(孫渫)]우량(宇樑)이 보러왔다. 정호인(鄭好仁)이 어제 왔다가 오늘 떠났다. 신임 수령은 나에게 전부터 애정이 두터운 자인데 부정척사 통문 때문에 경상우도 사람들이 경계하면서 안부도 못하게 하였는데, 이제 서로 전혀 아는 척 하지 않은 태도가 우스울 만하다. 채정응(蔡靜應)[채몽연(蔡夢硯)] 부자가 기다리고 있으니 매우 이례적이었다. 모두 말하기를 "그 부자는 요사이 여러 번 우도를 왔다 갔다 했는데 종적이 괴이하다."라고 하니 어찌 그러한가. 선생님의 문하 선비들이 그를 대하는데 매우 박하였고 다른 의견을 내지 못하게 하였으며 그 또한 신진후배들과 함께 말하지 못하고 옛 친구들도 그를 박하게 대하였다. 또한 어떠한 일인지 알지 못하겠다. 원양(原壤)은 어머니가 죽자 노래하였는데도 공자는 오랜 친구의 의리로서 끝내 인연을 끝내지 않았다. 하물며 그는 난리 중에 상을 치러서 사람들이 효자라고 칭했다. 큰 것을 먼저 확립해 놓은 사람이라 할 수 있다. 비록 소소한 예절을 지키지 않았지만 어찌 작은 실수로 큰 예절을 잃었다고 의심하겠는가. 지난번 사수(泗水)에서 순검사(巡檢使) 권변(權忭), 순찰사(巡察使) 박경신(朴慶新), 경주부윤(慶州府尹) 윤효전(尹孝全)이 술자리를 벌여 머물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신안[성주의 옛 지명]현감 김중청(金仲淸), 종사관(從使官) 이윤우(李潤雨) 또한 말석으로 참석하였다. 그 일을 비방하는 자들이 있었는데 "어떤 무리들이 정 모[정구]의 집에서 연회를 벌였는데 조정을 헐뜯는 것이 심함에 이르지 않은 것이 없다." 라고 하였다. 또 당시 재상 한탁주(韓侂胄)에 비유한 것을 터무니없게 불경한 말로 꾸며서 경상우도에 퍼뜨리고 도성에까지 미쳤으니 오래지 않아 화가 일어날 거라고 하였다. 지금 부의 사람들에게 들으니 정인홍에게 출입하는 자들이 그것을 모방하여 그 부자를 가리켜 "그들이 어찌 이와 같이 심한가."라고 하였다. 이 때문에 나의 부정척사의 글도 다시 우도에서 거론된다고 하니 매우 두렵다. 순사(巡使)가 최동률(崔東嵂) 형제에게 "이와 같은 말이 생기니 괴이하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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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二十三日。
渫及宇樑來見。鄭好仁昨來今去。新倅於余前甚愛厚者。而以扶正斥邪通文之故。江右人戒勿相問。故今來。頓無相知之態。可笑。蔡靜應父子待之。頗異禮。皆云。渠父子。近日屢度往反右邊。蹤跡詭秘云。豈其然乎。先生門下士。待渠甚薄。使之不容致有異議。渠亦不道與新進後輩。而薄待舊知之友。亦未可知也。原壤母死而歌。孔子以舊知之義。不終絶。況渠則謹喪亂離。人稱孝哉。可謂先立其大者。雖有小小節目之未盡。豈以小失。有疑於大節乎。頃日泗水上。巡檢使權忭巡察使朴慶新慶州府尹尹孝全設酌留話。新安倅金仲淸從使官李潤雨亦參席末。有毁之者。某某輩。曲會鄭某家。謗誣朝廷。無所不至。且譬時宰於韓侂胄。巧作無稽不經之說。播于江右。及於都中。不久禍作云云。今聞此府人。出入來門者。做出。指渠父子。渠也豈至於此極哉。因此吾斥邪文。更說於右。甚可懼也。巡使言崔東嵂兄弟。作爲此說。可怪。

주석

‘원양은 어머니가 죽자~’: 원양은 공자의 친구이다. 그의 어머니가 죽었을 때 공자가 친구로서 곽(槨)을 만들 나무를 부조하니 원양이 그 나무에 올라가서 노래를 불렀다. 이에 자로가 부조하지 말자고 청했을 때 공자가 한 말이다. 『孔子家語』 권8 「屈節解」 ‘큰 것을 먼저 확립해~’: 먼저 큰마음 자리를 확고하게 정해 놓았기 때문에 자그마한 이목(耳目)의 유혹 따위에는 결코 넘어가지 않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맹자가 대인(大人)을 설명하면서 표현한 말이다.『孟子』 「告子」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