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문중 자료 > 일기 > 모당일기(慕堂日記) > 05권 > 1617년 > 12월 > 27일

모당일기(慕堂日記) 리스트로 첫 페이지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마지막 페이지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8+KSM-WM.1614.2726-20160630.065310200001
URL
복사
복사하기

상세내용

상세내용 리스트
날 짜 1617년 12월 27일 / 光海9 / 丁巳
내 용
선사(先祠)에 배알하였다. 아침에 남산(南山)에 납채(納采)하고 전안(奠鴈)하였다. 최청숙(崔淸叔), 양원지(楊元之), 서백유(徐伯裕)가 데리고 돌아왔다. 옛 사람이 "처를 취한 것이 우리 집만 못하다"고 말한 것이 그것에 가까웠다. 희로(希魯)[손처약(孫處約)]가 병을 무릅쓰고 들어갔다. 이상진(李尙眞)채정(蔡楨)이 들렀다가 갔다. 관유(館儒)가 팔도(八道)에 통문을 보냈다. 인목대비의 열 가지 죄를 열거하면서 온 나라가 한결같이 소를 올렸다고 말을 하였다. 비망기(備忘記)에, 선생이 전은(全恩)을 주장한 잘못을 극히 나무랐다. 사람들은 모두 선생을 위해서 두려워하였다. 이때 조정에서 시정에게 명령하여 비록 한 집안 식구가 열 사람이라도 빠짐없이 모두 동대문(東大門)에서 신문(新門)에 이르기까지 어깨를 나란히 하여 대비를 폐하라고 말을 하게 하였다. 삼사(三司)에서 합소(合疏)한 것이 여러 건이었다. 하루는 명령이 나옴에 시정의 부인들이 모두 표주박을 이고 지팡이로 표주박을 두드리면서 ‘하하’하고 웃었다. 사람을 시켜 그것을 물어보니, "대비를 폐하는 것이 기쁠만하다."라고 대답하였다. 또 시정의 백성들에게 명령하여 또한 의론을 따르게 하였다. 어떤 노인이 홀로 서서 "폐할 수 없다."고 말을 하니, 사람들은 모두 그가 장부인이지만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하였다.

이미지

원문

二十七日。
謁先祠。朝納采南山奠鴈。崔淸叔楊元之徐伯裕繞歸。古人云。娶妻不若吾家者近之。希魯扶病入去。李尙眞蔡楨來見去。館儒通文八道。數大妣十罪。擧國同疏云云。備忘記。極責先生全恩之非。人皆爲先生懼焉。時朝廷令市井。雖一家十口无漏。皆自東大門至新門。比肩而立言其可癈〖廢〗。三司合疏者累矣。一日令出。市井婦。皆戴瓢子。以杖叩瓢。皆笑荷荷。使人問之。答云癈〖廢〗大妣可喜。又令市井民。亦使隨議。有老人獨立曰。不可癈〖廢〗。人皆丈夫人也。然必死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