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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604년 4월 11일 / 宣祖37 / 甲辰
내 용
아침에 비로소 선생을 뵈었는데, 덕스러운 기상이 수연(粹然)하여 옛 용모와 다르지 않았다. 종일 모시고 대화를 나누는데 말씀이 더욱 온화하고 공손하시니, 확충하고 수양한[充養] 내면의 깊음을 헤아리지 못하겠다. 이 선생(李先生)의 일을 물었더니, "성견(聖見)이 이와 같은데, 이때 상소로 진달하신 것은 말이 매우 쉽지 않았었네." 라고 했다. 그 참에 "이 선생께서 당시의 처사가 어떠하였기에 후인들의 의심과 의논이 있게 되었습니까?" 라고 물었다. 선생은 오랜 뒤 비로소 "내가 예전 퇴계(退溪)[이황(李滉)] 선생님을 모실 적에 일찍이 이때의 일을 물었었는데, 선생님께서 불연(怫然)히 안색을 고치며 말씀하시길, ‘허물없는 곳에서 과오를 찾는 것이 옳은가?’라고 하셨네. 나는 송구하여 물러났다네." 라고 대답했다. 송학무(宋學懋)도 와서 내일 좌, 우도(左右道)에 통문하여 상소 모임을 가질 계획을 의논했다. 선생을 모시고 천상(川上), 오창(五蒼) 두 정자에 올라 두루 관람하니 기이한 승경이었기에 ‘좋은 사람을 좋은 땅을 얻고, 좋은 땅도 좋은 사람을 얻는다’고 할만하다. 지난 날 계종숙(季從叔)이 오창정(五蒼亭)에 먼저 올랐다가 돌아와서 정자에 이름 한 뜻을 말해주었는데, 내가 지극히 사모하고 우러르는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는 감히 졸구(拙句)를 지어 구구한 나의 뜻을 붙이고, 희로(希魯)[손처약(孫處約)]에게 말을 했었다. 희로가 이제 와서 시를 베껴 행보(行甫)[서사원(徐思遠)]에게 보이니, 행보도 시 한 구를 짓고자 하자 시를 짓지 않았던 자들도 기뻐하며 이어서 화답했다. 그리고 희로를 재촉하여 시를 짓게 하고, 한 종이에 열서하고 그를 시켜 선생에게 드리게 했다. 행보는 비록 ‘뵙기도 전에 먼저 선생의 정자에 관한 시를 지은 점은 참망(僭妄)한 죄가 없지 않다’고 책망하나, 나는 ‘아직 가보기도 전에 선생의 정자에 대해 시를 읊었다는 점에서 그를 더욱 사모하고 우러르는 정을 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에 이르러 선생께 그 시를 드리면서 행보가 한 말까지도 모두 말씀드리고, 이어서 참람되고 더럽힌 죄에 대해 사과드렸다. 선생이 웃으며, "여러 군들이 나에게 시를 보여주기를 아끼는 건가?" 라고 했다. 저녁에 물러나 학무의 집에서 묵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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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十一日。
朝始拜先生。德氣粹然。不改舊容。終日侍話。語益溫恭。充養之厚。不可量也。問李先生事。曰聖見如此。此間陳疏語甚不易。因問李先生當時處事如何。而有後人議疑乎。先生久乃答曰。余昔侍退溪先生。曾問此時事。先生怫然變色曰。求有過於无過之地。可乎。余懼而退云。宋學懋亦來。議明日左右道通文會疏之計。侍先生。登川上五蒼兩亭。周覽奇勝。可謂人得地地得人矣。前日從叔季先登五蒼亭。歸言名亭之義。余不勝愛慕景仰之至。敢掇拙句。以寓區區之意。言諸希魯。希魯今來。寫示行甫。行甫亦欲狀一句。未就者喜而繼和。促希魯以賦之。列書一紙。俾獻于先生。行甫雖責未及拜履。先題亭詠。不无僭妄之罪。余以謂吟哦先生之亭於未之前。尤見愛慕景仰之情。至是拜獻其詩。而俱道行甫語。因謝僭瀆之罪。先生笑曰。諸君慳我示詩乎。夕退宿學懋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