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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604년 2월 22일 / 宣祖37 / 甲辰
날 씨 흐리다.
내 용
사당에 배알을 했다. 해가 뜰 무렵에 제사를 의례대로 행하고 음복[준례(餕禮)]을 마쳤다. 점심을 먹은 뒤에 우후(虞侯) 전계신(全繼信)의 모친상을 조문했다. 떨기 매화 세 가지와 백일홍(百日紅) 한 그루를 얻어서 빈 뜰이 조금 찼다. 포산 수령(苞山倅)에게 분매(盆梅)가 있었는데 선생(先生)은【한강(寒罔)】 구해도 얻지 못했다. 후에 순사(巡使)에게 바쳤는데 곧 바로 말라 죽었다. 선생이 경(經)을 지어 놀리며 말하기를 "포산 수령 김응성(金應成)이 순사에게 분매를 바쳤는데, 매화가 죽었다니 이상한 일이다."고 했다. ‘구지부득(求之不得)’ 이 네 글자는 마땅히 ‘후(後)’ 자 앞에 있어야 한다. 나도 한 가지 경을 써서 말하기를 "미악재(彌樂齋) 서행보(徐行甫)[서사원(徐思遠)]는 아끼던 분매 한 가지를 꺾어 순사에게 보내어 일률시(律詩)를 얻었다.【순사가 5언 4운 시로 답했다.】 왈(曰)은 【‘왈(曰)’자는 마땅히 ‘미(彌)’ 자 위에 있어야 한다.】 응성(應成)은 한훤당(寒暄堂) 김선생(金先生)[김굉필(金宏弼)] 의 후손이고 응성(應聖)[김응성(金應聖)]이 진짜 이름이었다. 매번 가문의 음서로 추천을 받았으나 낙점의 은혜를 얻지 못한 것이 여러 번이었다. 이의(吏議, 이조참의) 박이장(朴以章)은 이웃 마을 벗이었다. 그가 이름을 ‘성(成)’ 자로 고쳐주어 망에 들으니 곧 이롭게 되어 삼장시(三場試)를 멈추고 와서 현(縣, 포산현)에 부임을 했다. 【‘성(聖)’자를 가지고 이때 삼장시도 겸했다.】당시 사람들이 말하기를 "아버지가 계시는데 알리지 않고 고친 것은 불효이고, 이름을 고쳐서 임금을 속인 것은 불충이요. 떨어질 것을 근심하여 삼장을 보지 않는 것은 지혜롭지 않은 것이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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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二十二日。
陰。謁先祠。質明。行事如儀。餕禮畢。午後。弔全虞侯【繼信】母喪次。得叢梅三條。百日紅一樹。虛庭稍實。聞苞山倅有盆梅。先生【寒罔】求之不得。後獻巡使。卽枯死。先生作經。譏之曰。苞山倅金應成。獻盆梅于巡使。梅死之。可謂奇談也。求之不得。此四字。當在後字上。余亦有一經曰。彌樂齋徐行甫。折愛盆梅一枝。寄巡使。得一律詩。【巡使以五言四韻詩。謝之。】曰。【曰字。當在彌字上。】應成。寒暄堂金先生之後。而應聖眞名也。每以門廕被薦。而不得蒙落點之恩者。屢矣。吏議朴以章隣邑友也。改以成字。入望卽利。停三場試。【以聖字時兼三場試。】來赴縣宰。時人爲之語曰。父在不告改。不孝也。改名以欺君。不忠也。患失負三場。不智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