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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604년 2월 1일 / 宣祖37 / 甲辰
날 씨 맑다가 흐리다. 밤에 눈이 내리다.
내 용
선사(先祠)에 배알했다. 동네에 있었다. 『이락연원록(伊洛淵源錄)』을 읽었다. 늦은 아침 서백유(徐伯裕)[서승후(徐承後)]가 와서 이야기했다. 손경징(孫景徵)[손기양(孫起陽)]이 고산서원(孤山書院)과 관련하여 의혹을 해명하는 말을 전했다. 【상사(上舍) 대인을 매장하려 했으나 의론이 있어 하지 못했다. 비방하는 말이 많이 나왔었다.】 이사유(李士綏)[이응기(李應祺)]가 계속하여 작은 술자리를 마련했는데, 바로 동원(洞員)의 술을 이었다. 뜰의 매화가 가뭄을 앓아 피지 않았다. 취해 시 한 수(首)를 읊조려 위로했다. 저녁에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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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二月【壬午】
一日。
晴陰。夜雨雪。謁先祠。在洞。讀淵源錄。晩朝。徐伯裕來話。因邀希魯家。孫興彦亦來。傳景徵孤山【書院。】解惑語。【欲葬上舍大人。有議。未果。多致間言。】李士綏仍設小酌。乃洞員升酒也。庭梅患旱未開。醉吟一絶以慰之。夕還。

주석

1) 백유(伯裕) : 서승후(徐承後, 1563-?)의 자(字), 호는 경재(耕齋). 『영모당통강제자록』, 『팔공산회맹록(八公山會盟錄)』. 망우당 곽재우와 의병을 일으킴. 『용사세강록(龍蛇世講錄)』에 수록되어 있음. 1615년부터 학문을 논한 것으로 알려짐. 2) 경징(景徵) : 손기양(孫起陽: 1559-1617)의 자(字). 호는 오한(聱漢) 또는 송간(松磵), 손겸제(孫兼濟)의 아들. 손겸제(孫兼濟)의 아들. 1585년 사마시에 합격하고, 임란당시 성현찰방(省峴察訪)으로 방어했으며, 1602년 이덕형(李德馨)의 천거로 영천군수, 1610년 창원부사를 지냈다. 12년 낙향하여 학문에 전념함. 저서로는 『배민록(排悶錄)』2권과 『철조록(輟釣錄)』1권이 있음. 3) 사유(士綏) : 이응기(李應祺)의 자(字)로 『영모당통강제자록』에 수록되어 있음. 1602년 동학암에서부터 주자학을 강론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