十七日。
朝告歸。是日城主通讀于査齋時。鄭好仁金善慶從。晩朝至齋。行甫昨來。已與諸友講論。楊四知被誘李弘中崔璣奸議。亦署死生相救之文。不可說也。族子至愚。不足責也。俄而城主來。終日聽讀小學家禮。日暮講罷。命觴屢。
朝告歸。是日城主通讀于査齋時。鄭好仁金善慶從。晩朝至齋。行甫昨來。已與諸友講論。楊四知被誘李弘中崔璣奸議。亦署死生相救之文。不可說也。族子至愚。不足責也。俄而城主來。終日聽讀小學家禮。日暮講罷。命觴屢。
| 날 짜 | 1613년 8월 17일 / 光海5 / 癸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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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용 |
아침에 돌아갈 것을 아뢰었다. 아날 성주(城主)가 선사재(仙査齋)에서 통독(通讀)을 했다. 정호인(鄭好仁), 김선경(金善慶)이 따랐다. 늦은 아침 재(齋)에 도착하니 행보(行甫)[서사원(徐思遠)]가 어제 와서 이미 여러 벗들과 강론하고 있었다. 양사지(楊四知)은 이홍중(李弘中), 최기(崔璣)의 간사한 의론에 꼬임을 당했고 또 생사를 서로 구하자는 글에 서명을 했다고 하니 (그 어리석음을)이루다 말할 수 없었다. 족자(族子)가 지극히 어리석어 나무랄 가치도 없었다. 갑자기 성주(城主)가 와서 종일 『소학(小學)』과 『가례(家禮)』를 청독(聽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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