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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613년 4월 5일 / 光海5 / 癸丑
내 용
선생이 나에게 "오늘은 외가 묘에 일이 있어서 조용히 머무르며 이야기 나누지는 못할 듯한데, 어찌 먼저 복노(卜奴)를 보냈는가?" 라고 했다. 아침에 서천군(西川君) 행장(行狀)【선생의 중형(仲兄)이다. 선생께서 찬(撰)했다.】을 꺼내셨다. 내용을 보니 그의 청빈했던 의표(儀表)가 마치 좌우에서 모시는 것과 같았다. 같은 시대에 태어나 만나 뵙지 못했다는 것이 한스럽다. 행장가운데에 "집안에 부릴 노복은 부족하다[門乏應童]", "자리 방석은 갖추어있지 않다[茵薦不具]" 라고 운운한 부분이 있는데, 선생께서는 "지위는 삼공(三公)과 나란히 하면서도 청빈하고 검소함이 이와 같다고 누가 믿을 수 있겠는가? 오직 학무(學懋)가 그것을 알 것이다." 라고 했다. 학무는 "이것이 바로 실록(實錄)입니다." 라고 했다. 학무와 이별하고, 선생은 대곡(大谷)으로 갔는데, 내가 따라갔다. 장덕우(張德優)가 먼저 묘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일이 끝나고 덕우가 점심을 올렸다. 덕우는 여헌(旅軒) 장덕회(張德晦)[장현광(張顯光)]의 종제(從弟)이다. 외파(外派)로 덕회는 나에게 십형제(十兄弟)이다. 덕우가 나를 족주(族主)라 하니 선생께서 웃으며 "어째서 형에게 다만 족주라고만 하고 형이라 하지 않는가?" 이후부터 덕우는 매번 형이라 부를 것이라 했다. 김경윤(金景閏), 도정언(都廷彦)이 와서 선생을 뵈었다. 장차 돌아가려 할 적에 그들은 수로를 통해 가기를 청하며, "오는 길에 산굽이의 길이 진흙탕에 미끄러워 매우 험할 듯합니다." 라고 하여 강을 따라 왔다. 아름다운 풀과 푸른 들이 있었고, 길은 매우 평탄했다. 덕우는 중도에 인사하고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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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五日。
先生謂余曰。今有事于外墓。似不容從留話。何如先遣卜奴。朝出西川君行狀。【先生仲兄也。先生撰。】淸苦之儀。如侍左右。生同一世。恨不得奉拜也。狀中有門乏應童。茵薦不具云云。先生曰。孰信位儕三公。而淸素如此乎。惟學懋知之矣。學懋曰。斯乃實錄也。別學懋。先生■〔大〕谷。訥從行。張德優先待於墓。罷事。德優呈午飯。德優旅軒張德晦之從弟也。以外派。德晦於余十兄弟也。德優謂余族主。先生笑曰。何如兄而只言族主。不稱兄乎。後德優每呼兄云。金景閏都廷彦來拜先生。將還。請江路曰。來路山曲泥滑。甚似崎嶮。於是沿江而來。芳草靑郊。路甚平夷。德優中路辭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