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문중 자료 > 일기 > 모당일기(慕堂日記) > 03권 > 1613년 > 3월 > 21일

모당일기(慕堂日記) 리스트로 첫 페이지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마지막 페이지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7+KSM-WM.1600.2726-20150630.065310200001
URL
복사
복사하기

상세내용

상세내용 리스트
날 짜 1613년 3월 21일 / 光海5 / 癸丑
내 용
선사(先祠)에 배알했다. 성주(城主)의 상차(喪次)에 들어갔다. 호상(護喪)하는 도구들이 모두 채단(綵段)을 사용하였으니, 비록 상대부(上大夫)라도 이보다 더할 수 없다고 했다. 비용은 연가(烟家) 당 거두어들인 것이 거의 200필(疋)에 이르렀다. 성주가 병이 들었을 적에 그의 아들이 관직을 그만두고 돌아가길 권하자 그는 "만약 관(官)에서 죽는다면 상(喪)을 치르는 범백(凡百)을 모두 갖출 수 있겠지만, 집으로 돌아간다면 너는 무슨 힘으로 상을 치르겠느냐?" 라고 했다. 그는 지난겨울부터 오로지 업무는 보지 않고, 사람을 만나면 으레 수작을 행하였으며, 일이 생기면 유향소로 넘겨버렸다. 거의 공관(空官)이 된지 반년 남짓에 아래로는 교활한 서리에 이르기까지 품은 마음을 방자하게 행함을 어찌 이루 다 말하겠는가? 그가 죽는 날에 서리들이 장부를 훔쳐 공지(空紙)에 관인을 찍었고, 목동(木同)으로 징간(徵干)하고, 미석(米石)으로 가세(加稅)하여 모조리 그들의 소유가 되었으니 이는 속담에 이른바 "공(空)은 공으로 돌아간다[空歸空]." 는 것인가?

이미지

원문

二十一日。
謁先祠。入臨城主喪次。護喪之具皆用綵段。雖上大夫無以加此云。價出烟家。幾至二百疋。病時渠子勸解歸。曰若死於官。治喪凡百可盡其具。歸家則汝何力以治之。自前冬專不視事。遇人則例行酬酢。有事則讓鄕所。幾於空官半年餘。下及猾吏。恣行胸臆。何可勝言。死之日竊簿書空紙打印。而懲干木同。加稅米石。盡爲他人之有。此諺所謂空歸空者耶。

주석

1) 목동(木同) : 목(木)은 무명, 동(同)은 묶음을 세는 단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