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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613년 1월 7일 / 光海5 / 癸丑
날 씨 종일 흐리고 비가 흩뿌리다.
내 용
이른 아침 노곡(蘆谷)에 들어가 선생을 뵙고 새해 안부 인사를 드렸다. 말을 떼자마자 선사재(仙査齋)에서 서로 만나지 못한 유감을 말씀하셨다. 이어서 행보(行甫)[서사원(徐思遠)]의 말을 빌려 전하며, "기도(幾道)희로(希魯)[손처약(孫處約)]의 말을 타고 와서 이르는 것은 되지만, 다만 희로만 보내 이르게 하는 것은 불가하다." 라고 했다. 나는 무릎을 꿇고 대답하며, "사람은 각기 정성이 있는데, 희로도 선생님께 정성이 있으니 어찌 감히 그에게 ‘너는 우선 머물고 있어라’고 말하고 그의 말을 빼앗아 타고 올 수 있겠습니까?" 라고 했다. 선생은 웃으며 "그러하네." 라고 했다. 대개 선생은 비록 행보의 말을 빌려 하신 말씀이지만, 스스로 만나지 못한 것을 유감으로 생각하시어 누차 말씀을 그치지 않으셨다. 안주 몇 가지를 열어서 드렸지만 한 잔도 안 되어, 나는 취하여 물러났다. 한밤중에 선생이 등불을 밝히고 앉으셨고, 나 또한 비로소 깨어났다. 선생이 손수 숯을 피울 적에 시생(侍生) 이충민(李忠民)에게 술을 데우라고 명했었는데【어제 내가 가져온 술이다.】내가 취한 이후부터 술을 마시지 않았기에 주시는 술을 감히 사양 못하고 억지로 5순배를 마셨더니 구역증이 심하게 났다. 선생께서는 "술은 혼자 마시는 이치는 없네." 라고 하시며 (자리를)파했다. 이야기가 송 순사(宋巡使)의 음탕하고 광포한 일에 이르렀다. 송(宋)은 선생에게 "나는 술을 좋아하면 다만 여색을 좋아한다는 한 가닥 말에 전념해왔습니다." 고 했었는데, 선생은 또 "주 목사(州牧使)로 재직할 때 나에게 의혹됨이 심했는데, 이번에 와서 잠시 만나고 바로 떠나면서 크게 이야기함이 없었으니 이는 그가 좋아하는 것이 바르지 못함을 부끄러워해서이다. 한 번에 두 여인을 품고, 기녀와 함께 수레를 타는 것은 류순지(柳詢之)【이름은 영순(永詢)으로 전임 순사(巡使)였다.】가 첫째가는 사람이다." 라고 했다. 또 "송 모(宋某, 송 순사)가 남쪽으로 와서 교의를 맺었는데, 한 번은 행보가 글짓기를 잘 하였기에 율시 2수를 지어 그를 이별하며 『소학(小學)』을 권하니 매우 가소로웠다. 그가 화답한 시는 행보의 본의를 버려두고 다만 ‘쟁류(爭柳)’, ‘심화(尋花)’, ‘환골(換骨)’ 등의 말로 이어놓았으니 『소학』을 권하는 뜻에 어긋났다 할 수 있다." 라고 했다. 또 "행보는 글짓기에 능하고 경중(輕重)을 잘 살피는데, 정경임(鄭景任)의 선정(善政)에 대해 ‘도(道)는 공맹(孔孟)을 잇고 학(學)은 정주(程朱)에서 전승되었다’고 칭송했고, 그를 찬(贊)하여 ‘우리 동방에서 어찌 역도(易道)로 사람을 통솔하겠는가’ 라고 했다." 라고 했다. 취중에 외람되게 율시로「노곡신거(蘆谷新居)」 1수를 지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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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七日。
終陰灑雨。早朝入蘆谷。拜賀先生寒暄。纔首言査齋未得相見之恨。仍借傳行甫語曰。幾道騎希魯馬來至可。而只送希魯至不可云。訥跪對曰。人各有誠。希魯亦有先生誠。安敢謂汝姑留。奪渠而騎來乎。先生笑曰。然。大槪先生雖托行甫說。自以不得見爲恨。屢言不已。進開肴數。未及一杯醉退。夜半先生明燈而坐。余亦始醒。先生手自熾炭。時李生忠民侍命煖酒。【昨日余酒。】余醉後。不得飮。而不敢辭。强進五杯。逆證大發。先生曰。酒無獨飮理。罷。語及宋巡使淫狂之事。宋言於先生。余專治一經言喜酒只好色。先生且曰。州牧時與余疑甚。今來暫見卽去。無許大話。是慚其好之不正也。一懷兩女。與妓同乘。柳詢之【永詢前爲巡使】一等人也。且曰宋南來交一行甫。善屬文故爲詩二律以別之。勸以小學。大可笑也。渠之和篇置行甫本意。只以爭柳尋花換骨等語縷縷焉。於勸小學之意。可謂左矣。且曰行甫能文。而省輕重。鄭景任善政。頌以道紹孔孟。學傳程朱。贊之吾東方。豈易道統人哉。醉中濫呈蘆谷新居一律。